선택 폭은 줄어든다는 아이러니
좋은 차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좋다’라기보단 ‘똑똑하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을 단순히 잘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똑똑하고 잘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치열한 경쟁 중이다.
한국에서도 당연히 똑똑하고 잘 달리는 자동차를 만나볼 수 있다.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들어와있고, 점유율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정작 자동차를 구매하는 아빠들은 “살만한 차가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좋은 차는 점점 많아지는데 살만한 차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아빠들의 자동차 선택 폭이 좁아지는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
일종의 희생에서 비롯된
틀 안의 드림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아빠들의 자동차’는 틀에 갇혀있다. ‘아빠들의 자동차’라며 나오는 자동차들은 대부분 미니밴이나 SUV 같은 패밀리카다. 물론, 실제로 미니밴이나 SUV를 드림카로 꿈꾸는 분도 계실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드림카’와는 거리가 멀다. 자동차 마니아들이 생각하는 드림카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자동차가 아닌 괴물같이 빠른 자동차일 것이다.
‘아빠들의 드림카=패밀리카’라는 공식은 일종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 마냥 재미만을 위한 차만 찾다 보면 결국 아이들이 탈 자리가 없어지거나 짐을 실을 공간이 없어진다. 가족들을 위한 차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위한 뒷자리가 있는 자동차, 짐을 넉넉하게 실을 수 있는 자동차가 고민 리스트에 올라온다. 대부분 미니밴이나 SUV다.
고민 리스트에는 국산차와 수입차가 올라온다. 리스트에 있는 자동차들을 두고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보고, 전시장을 방문해보기도 한다.
생각보다 머리 아프다. 국산차로 결정하자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고, 수입차로 결정하자니 여기 저기 말이 많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와 발품을 팔아 얻어낸 정보들, 그리고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자니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든다.
내수 차별 논란이 걸린다
국산차로 가기로 마음먹었으나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품질 이슈와 내수 차별 논란이다. 다른 나라에선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만큼은 현대기아차가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다. 그들을 둘러싼 품질 이슈와 내수 차별 논란은 자동차에 관심 없는 분들도 대부분 알고 계신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표적인 품질 이슈는 GDi 엔진 결함으로 인한 화재가 아닐까 한다. 북미에선 이 문제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까지 이어졌다. 같은 엔진이지만 한국에선 비교적 이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지난 12월 14일, 북미 소비자가 현대차를 상대로 집단 소송했다. 미국 NHTSA에 따르면, 290만 대의 현대기아차의 자동차가 충돌하지 않는 사고에서 자발적으로 화재를 일으키거나, 엔진 결함으로 인해 운전자들에게 신체적 상해를 주고, 손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한다. 해당 문제에 포함되는 차량은 ‘현대 쏘나타’, ‘현대 싼타페’와 ‘싼타페 스포츠(한국 맥스크루즈와 싼타페)’, ‘기아 옵티마(K5)’, ‘기아 쏘렌토’, ‘기아 쏘울’, ‘기아 스포티지’ 등 6개 모델이다. 고소장 원문에 따르면 문제의 원인은 한국에서도 논란 중인 ‘GDi 엔진’이다.
그들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는 “잘못된 설계 및 제작으로 인해 엔진 내부의 적절한 오일 흐름을 방해하여 조기 마모 및 고장을 유발하고, 부품이 고장 나면 엔진이 멈춘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내부 부품 파손으로 인해 엔진에 구멍이 뚫리고, 오일 등의 액체가 누출되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한다”라는 내용도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과거부터 제기되고 있으나 잠잠하다. 반면 북미는 유능한 변호사와 소비자, 그리고 정부가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섰다. 내수 차별 논란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싼타페’와 ‘팰리세이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현대차는 싼타페의 안개등을 북미에서는 기본으로 장착해주는 반면, 한국에선 뒤늦게 출시된 최상위 트림 ‘인스퍼레이션’에만 장착해주는 차이를 보였다. 당시 소비자들은 “출시 초기에 풀옵션 모델을 산 사람들은 뭐냐”라며 비판했다.
인스퍼레이션 논란은 최근 출시된 팰리세이드도 이어간다. 싼타페가 안개등으로 논란이었다면 팰리세이드는 디지털 계기판이 논란의 중심이 될 예정이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북미 모델에만 디지털 계기판과 원-톤 컬러를 적용한다. 논란의 여지없이 이미 북미 현대차 홈페이지에 이미 공개된 내용이다. 영상에 나온 팰리세이드의 디지털 계기판은 태코미터와 속도계 등 계기판 전체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것처럼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이뤄져 있다. 또한 ‘기아 K9’처럼 방향지시등을 켜면 사각지대를 카메라 영상을 통해 계기판에 표시해주는 ‘블라인드 뷰 모니터’ 기능도 갖추고 있다.
북미에만 적용하고 한국에는 아예 안 들어올 수도 있잖아!”라고 반박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팰리세이드에도 디지털 계기판이 도입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글화되어있는 팰리세이드의 디지털 계기판이 포착되었다. 싼타페 인스퍼레이션의 안개등처럼 디지털 계기판이 최상위 트림에만 기본으로 장착될지, 다른 트림에서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이러한 사례들이 반복되다 보니 국산차를 마냥 개운한 기분으로 구매하기 어려워졌다.
국산차는 유독 사공이 많다
둘째는 국산차는 유독 사공이 많다는 것이다. “그 돈이면 다른 수입차를 사겠다”라는 말은 두 번째 이유를 가장 대표적으로 대변해준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말인데, 높아진 국산차 가격 때문에 차라리 프로모션을 받고 수입차를 사는 편이 이득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에선 “수입차 사면 적은 서비스 센터와 수리비 감당하기 힘들다”라며, “마음 편하게 국산차를 사는 편이 낫다”라고 반박한다. 꼭 인터넷 기사가 아니더라도, 자동차 커뮤니티에 “국산차 무엇과 수입차 무엇 중 고민 중입니다”라는 질문을 올리면 한 번쯤 나오는 단골 멘트들이다.
수입차가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이야기와 이어진다. 셋째는 옵션을 이것저것 넣으니 수입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수입차보다 옵션 선택이 자유롭다. 좋게 말하면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업이 상품을 팔기 유리한 조건에 놓여있다.
쓸만한 옵션을 몇 가지 넣다 보면 몇백만 원은 기본으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차의 HTRAC 사륜구동 옵션은 25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트림별로 최대 옵션 가격을 살펴보면 싼타페는 465만 원, 팰리세이드는 500만 원, 그랜저는 628만 원가량 발생한다. 수백만 원 할인하는 수입차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품질 이슈가 말썽이다
수입차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어도 걸리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쪽도 대표적으로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수입차도 요즘 품질 이슈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가장 컸던 자동차 이슈는 BMW 화재 사태가 아닐까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비단 BMW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유독 이슈가 강조되었다.
또한 메르세데스 벤츠는 시동 꺼짐 결함이 발생하기도 했고, 재규어 랜드로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분들이 품질 이슈에 대해 알고 계신다. 아직까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품질’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것은 그나마 일본 브랜드 일부가 유일하지 않을까.
직접 타보기 전까진
서비스센터와 유지비가 걱정
국산차만 타다가 수입차로 넘어가려는 분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서비스센터와 유지비다. 많이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모르는 법. 이를 두고 “수입차는 아직 서비스센터가 많지 않다”, “수리비가 부담되어 국산차를 타야 한다”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수입 차나 국산 차나 서비스 품질이 좋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다”라며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품비나 공임비가 국산차 대비 비싼 것은 사실이다. 다만 메르세데스 벤츠, BMW, 토요타 같은 메이저 수입 제조사들은 서비스센터 숫자가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는 것도 명백하다. 판단은 구매자의 몫이다.
사회적 시선이 신경 쓰인다
어떤 제조사의 자동차는 사회적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한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실제 구매자들도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다. 자동차와 기술력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나,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누군가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자동차를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 내에서도 신경 쓰이는 시선이 있다. 다소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수입차를 살 때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회사 상사가 그랜저를 타는데 직급이 그보다 낮은 직원이 벤츠를 사겠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다.
다만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까진 없다
여론은 충분히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자동차로 평가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자동차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여론이 미치는 범위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론을 선택의 기준으로까지 삼을 필요가 있을까. 여론은 말 그대로 대중들 개인의 생각이 모여진 것일 집단일뿐 나의 생각과 환경에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주머니 사정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며, 그리고 ‘좋은 차’의 조건을 생각하는 기준도 다르다. 여론을 접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진짜 여론’과 ‘가짜 여론’을 구분하고, 선택의 기준이 아닌 좋은 참고 자료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수입차 좋다는 사람 정상
국산차 타는 사람 비난 비정상
수입차 타는 사람 비난 비정상”
최근 커뮤니티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 기사 댓글에서 보이는 말 중 하나다. “국산차 좋다는 사람은 정상, 수입차 좋다는 사람도 정상, 그런데 국산차 타는 사람을 비난하는 자는 비정상, 수입차 타는 사람을 비난하는 자도 비정상”… 사람마다 환경과 처지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자동차’, ‘나에게 필요한 자동차’를 생각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 돈 주고 사는 내 차인데, 어느 순간 아빠들은 가족들 눈치뿐 아니라 여론의 눈치도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돈이면 차라리 무슨 차를 사고 소고기를 사 먹겠다”, “그 차 사는 사람은 호구”, “아직도 그 차 사는 사람 있나?”… 반대로 질문해보자면, 그들의 말대로 자동차를 구매한다면 무조건 좋은 차를 살 수 있다고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인가.
여론은 언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기사 본문보다 댓글을 보는 분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올바른 여론과 토론, 그리고 비판이 필요하다. 비생산적인 비난은 불필요하다. 여론은 참고만 해도 충분하다. 자신의 환경과 적합한가, 자신의 성향과 적합한가, 그리고 자신의 경제 사정과 적합한가를 깊이 생각하다보면 ‘나만의 좋은 차’를 구매할 수 있다. 개인의 선택은 여론이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