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차, 시승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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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생 음악인이
89년생 듣는 이에게
‘서른에게’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 69년생 음악인이 89년생 듣는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 같은 것이다. 윤종신 씨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른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는 “이 시대에 서른으로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아마도 내가 서른일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압박과 불안이 일상을 억누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멋’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세를 부리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그 어떤 삶 안에서도 충분히 나만의 ‘멋’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멋’이라는 것은 각자의 생김새만큼이나 다를 것이다”라며 곡 설명을 이어갔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도태될까 봐 긴장을 하고, 어떻게든 삐끗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는 오늘날 서른에게 보내는 쓸쓸한 격려의 말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참고 : 2019 월간 윤종신 3월호 이야기 중에서

그가 말한 저마다 다른 ‘멋’
이 자동차가 갖고 있는 무언가
복잡하고도 어려운,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열함까지 공존하는 오늘이다.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는 요즘 저마다 다른 ‘멋’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추구하는 멋, 내가 생각하는 멋이 곧 내가 찾고 싶어 하는 행복일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오늘 말할 자동차는 남다른 멋을 가지고 있다. 이 자동차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자동차만이 뽐낼 수 있는 멋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투박하고, 누군가에게는 어딘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떨까. 모두가 똑같다면 그것은 ‘멋’이 아니라 곧 지나갈 ‘유행’에 불과할 것을. 오늘 오토포스트 시선집중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사진 김승현 기자

내용 들어가기 전
제원부터 간단히
시승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제원 수치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캐딜락 코리아가 올해 2월 국내에 출시한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이다. 426마력, 62.2kg.m 토크를 발휘하는 6,162cc V8 자연흡기 엔진과 자동 10단 변속기를 장착한다. 공인 복합연비는 6.8km/L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구매 가능한 가장 큰 SUV라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으실 것 같다. 크기 제원은 길이 5,180mm, 너비 2,045mm, 높이 1,900mm, 휠베이스 2,946mm, 그리고 공차중량은 2,675kg에 달한다.

Q. 편안한가?
A. 픽업트럭이 베이스다
푹신한 침대같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덩치가 워낙 크고 ‘미국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강하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편안한 승차감과는 거리가 멀다. 픽업트럭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SUV이기 때문에 편안한 SUV보단 대형 픽업트럭 승차감에 가깝다.

앞 서스펜션이 요철을 지날 때는 부드러우나 뒤 서스펜션이 요철을 지날 때는 단단한 느낌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륜 서스펜션은 독립식 SLA를 쓰고, 후륜 서스펜션은 일반적인 멀티 링크를 사용한다. 과속방지턱을 조금 거칠게 넘으면 3열 자리에 앉은 사람과 싸울 수도 있다. 단단한 후륜 서스펜션과 긴 차체 때문에 뒤로 갈수록 승차감은 그리 좋지 못하다.

큰 덩치 때문에 운전하기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아주 좁은 골목이나 주차장만 제외하면 편안하게 타고 다닐 수 있다. 차체가 높고 모든 유리, 그리고 사이드미러도 큰 덩치만큼이나 크기 때문에 시야가 좋다.

엔진 사운드는 은은하다. 10단 변속기 덕에 자연흡기 엔진임에도 일상 주행에서는 고회전 영역으로 갈 일이 거의 없다.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과분할 정도로 높은 배기량, 그리고 넉넉한 출력과 토크 덕에 힘이 부족하다고 느낄 겨를은 없다.

가속 페달 반응은 일반 승용차와 크게 다를 것 없다. 다만 브레이크는 조금 다르다. 평소에 타던 자동차보다 깊게 밟아주어야 한다. 브레이크 성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페달 위치가 일반 승용차에 비해 높은 탓이크다.

Q. 스포티한가?

A. 잘 다뤄야 한다
그리고 이걸 잡으려고
승차감을 포기한 것 같다
글쎄, ‘스포티’라는 키워드가 굳이 이 자동차 시승기에 필요할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필요하다’였다. 여기서 말하는 스포티는 페라리나 포르쉐를 다룰 때 쓰는 말과 결이 조금 다르다. 안전한 주행을 위한 한계를 설명드리는 맥락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한계를 알아야 한계를 넘지 않을 것이다.

6.2리터 V8 엔진이다. 도심에서 은은하게 울리던 8기통 사운드가 빠른 속도를 만나면 전혀 달라진다. 그 옛날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머슬카에서 들을 수 있었던 투박하고도 웅장한 사운드가 거칠게 울려 퍼진다.

다만 잘 다뤄주어야 좋은 사운드와 주행 탄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엔진이기 때문에 자연흡기 방식임에도 엔진 회전 범위가 적다. 6,000rpm이 마지막이다. 여기에 변속기는 10단 변속기가 달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엔진 회전수가 레드존에 도달하고, 변속 타이밍을 놓치면 힘이 빠져버린다. 대형 SUV로서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만약 “SUV도 스포티한 주행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른 차를 알아보는 것이 맞겠다.

서스펜션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아마 고속 주행에서의 움직임을 위해 승차감에서 타협을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차체가 높고 무겁다는 것은 코너에서 매우 취약한 움직임을 보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CT6’에도 적용된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에스컬레이드에도 적용되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CT6에서는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면 에스컬레이드에서는 고속에서 차체를 열심히 잡아주는 일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만약 서스펜션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물렁했다면 불안정하게 뒤뚱거렸을 것이다. 승차감에서 타협을 본 덕에 고속 코너 안정성을 좀 더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다만 이게 옳은 결정인지는 모르겠다. 이 자동차를 ‘카마로’처럼 타고 다닐 사람은 거의 없을 터. 세대교체되는 모델은 부드러운 승차감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Q. 똑똑한가?

A. CT6는 독일차를
잘 따라 한 미국차
에스컬레이드는 뼛속까지 미국차
“우리는 독일차를 따라 해왔고,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캐딜락 CEO가 실제로 한 말이다. 창작의 근원적 에너지는 막연한 동경이라 했던가. CT6는 ‘독일차를 잘 따라 한 미국 차’라는 느낌이 매우 강했다.

과거 미국차는 똑똑함보단 투박함에 가까웠다. 똑똑한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들을 충족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그러나 CT6는 똑똑했다. 수많은 전자 장비들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편안해야 할 때는 편안하고, 거칠어야 할 때는 거칠다.

에스컬레이드는 뼛속까지 미국 차다. 막연하게 독일차를 따라가려 하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SUV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크기로 압도하는 덩치, 투박한 칼럼식 기어 레버, 휠 하우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서스펜션과 스프링, “덜컹”하며 내려오는 전동식 사이드스텝 등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엉성하진 않다. 다부진 멋이 있다.

파워 트레인도 오늘날 나오는 독일차들처럼 ‘똑똑하다’라고 느끼기는 어렵다. 변속 타이밍을 잘못 놓치면 힘이 쭉 빠지고, 최신 엔진도 아니다.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한 고집 센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이 추구하는 멋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사람 정도.

Q. 럭셔리한가?

A. 소재는 항상 좋다
단, 이 부분들은 빼고
모든 캐딜락 모델들이 실내 소재는 좋은 것을 쓴다는 생각이다. 대형 세단 CT6를 비롯해 중형 세단에도 품질 좋은 알칸타라와 가죽, 나무, 알루미늄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소재 선정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외관이나 차체 움직임처럼 실내도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멋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좋게 말하면 투박하고도 무심한듯한 멋으로 채워졌고, 비판 조로 말하자면 세대교체한지 6년이 지난 모델이기 때문에 오래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행히 캐딜락은 현재 에스컬레이드 세대교체 모델 개발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스티어링 휠, 시트, 도어 트림, 대시보드 장식 등에 사용된 가죽, 나무, 알루미늄, 알칸타라 소재는 칭찬할만하다. 다만, 이 부분은 다음 세대교체 모델부터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에스컬레이드뿐 아니라 모든 캐딜락 모델이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스티어링 휠과 기어 레버 다음으로 운전자 손이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일까. 센터패시아에 있는 각종 버튼들이 아닐까 한다. 캐딜락은 공조장치 버튼들을 물리 버튼이 아닌 터치식으로 바꾸었다. 손이 자주 닿는 곳인데 블랙 피아노 재질을 사용한다. 조작감이 떨어질 뿐 아니라 지문도 잘 남는다. 운전자 시선을 빼앗기 때문에 조작하기 편해야 하는데 터치식 버튼이 물리 버튼보다 직결감이 좋을 리 없다.

Q.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A. 오래된 머슬카를 타는 느낌
물론 긍정적인 측면으로
‘에스컬레이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오래된 머슬카’같다. 오늘날 나오는 ‘포드 머스탱’이나 ‘쉐보레 카마로’는 과거에 비하면 매우 똑똑해졌다. 전자 장비 개입이 맥라렌이나 아우디만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각 장비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과거의 머슬카는 똑똑함과 거리가 멀었다. 흔히 말하는 ‘직빨’에만 강하고 급격한 코너를 만나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게 된다. 그럼에도 전 세계인들이 사랑했다. 오래된 머슬카만이 가지고 있고, 뽐낼 수 있는 투박하고도 무심한 멋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드를 오래된 머슬카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들은 똑똑하고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없어서는 안 될 공식처럼 여긴다. 마치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도태될까 봐 긴장을 하고, 어떻게든 삐끗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오늘날 서른처럼 말이다.

최신 감성과 맞지 않는 자동차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이 자동차만이 가질 수 있는 멋과 이 자동차만이 표현할 수 있는 멋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마 세대교체되는 에스컬레이드도 미국스러운 투박한 멋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까. 가장 좋은 것은 단점은 제거하면서 정체성은 유지하는 것이다.

Q. 누구를 위한 차인가?

A. 멋 부리고 싶은 사람들
‘과시’와는 다른 무언가
남다른 덩치만큼 에스컬레이드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1억 3,817만 원이다. 알아보니 공식 할인은 75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자동차를 사기 위해 1억 3,000만 원 이상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어떤 차를 사겠다고 마음 속에 명확하게 정해놓은 사람일 것이다.

에스컬레이드는 남다른 멋을 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 맞는 자동차다. 허세와는 다른, 말 그대로 남다른 ‘멋’ 말이다. 압도하는 덩치와 화려한 디자인에도 허세 부리려고 과시한다는 느낌은 없는 희한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사실 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허세와는 거리가 멀다. 마트 주차장에 갈 때마다 주차 자리를 신경 써야 하고, 좁은 골목길은 최대한 피해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것이다. 1억 4,000만 원이면 선택지도 많다.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을 원하는 분들이라면 다른 차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 ‘멋’이라는 것은 각자의 생김새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보더라도 대담하게 양보하는 게 ‘멋’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멋’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먼저 손 내밀고 포용하는 게 ‘멋’이 될 수도 있다”라는 어떤 음악인의 말처럼, 에스컬레이드만의 멋을 추구하는 자들을 위한 마니아틱한 자동차다. 오토포스트 시선집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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