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누군지 알 수 있는 유명 정치인이 한동안 말과 행동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매번 실수였다며 대중에게 사과했다. 시사 · 정치적인 사안을 좌파, 우파 논객을 통해 다루고 장년 개그맨이 중립적으로 사회를 보는 프로그램에서, 한 논객은 이 유명 정치인을 두고 ‘실수가 반복되면 진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판매 점유율만 놓고 보면 쉐보레가 르노삼성을 조금 앞선다. 말 그대로 조금이라서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두 브랜드가 차이점이 있다면 점유율은 거의 비슷하지만, 쉐보레의 신차 소식은 르노삼성에 비해 걱정과 우려를 함께 가지고 온다는 점이다. 르노삼성의 판매량 대부분은 중형 체급인 반면, 쉐보레는 소형과 준중형 자동차가 잘 팔린다.

 김태현 기자

(쉐보레 트랙스 스파이샷 출처=motor1.com)

많은 사람들은 이제 쉐보레 자동차에 관한 기대를 많이 하지 않는다. 기대를 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트랙스, 올뉴 크루즈, 이쿼녹스가 그랬다. 트랙스는 우리나라에서 소형 SUV 시장의 포문을 연 모델이나 다름 없다. 어느 분야에서나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은 실패할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 시작하는 만큼 성공했을 때에는 그 과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주식처럼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인 셈이다. 쉐보레 트랙스는 리스크를 크게 감수하지 않고도 소형 SUV 잠재 소비자 마음을 충분히 열 수 있었지만 과욕을 부리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우리나라에 처음 출시된 2013년형 트랙스가 기본 가격대가 1,940~2,289만원대였는데 오랫동안 서민의 손과 발이 되어준 준중형 아반떼가 2013년형 기본가격이 1,365~1,955만원이었다. 둘 다 가솔린 모델. 트랙스는 연착륙을 했어야 했다. 상품성이 좋으니까 시장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가격을 밀고 나가는 것은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가격정책이다.

신차는 시장에 부정적인 파문을 줄이는 방향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SUV라고 해도 소형은 소형. 준중형 세단 가격보다 비싸다면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막 기초적인 경제 공부를 시작한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쉐보레 코리아는 억울할 수도 있다. 이런 가격 정책이 미국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된 것이라면.

올뉴 크루즈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출시 당시 동급 준중형 세단보다 차체 크기를 조금 키웠으며 이전 세대보다 공차중량을 130kg 정도 덜어낸 덕분에 약간의 연비 상승도 있었던 올뉴 크루즈. 포스코에서 만든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안정성까지 보강해 상품성이 나쁘지 않았다. 출시를 앞두고 발견된 에어백 결함 때문에 출시일이 늦어졌고 결정적으로 가격이 높았던 게 패착이다. 현금할인도 없었다고. 이쿼녹스는 출시 직전까지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가격이 공개되자마자 불에 타고 난 장작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냄새만 풍기고 존재감이 사라졌다. 우리나라 중형 SUV는 현대의 싼타페와 기아의 쏘렌토가 철옹성같은 단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쿼녹스의 가격만 보면 우리나라에서 영업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크기도 작고 엔진 배기량도 작고 변속기도 단수만 놓고 보면 소비자에게 소구하기 어려운 상품성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쉐보레 라인업은 자동차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서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쉐보레는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좋지 못하지만, 전 세계에서 팔리는 글로벌 브랜드다. 그런 만큼 상품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며 최근에 보이는 패밀리룩은 자동차 업계에 부는 트렌드 안에 있긴 하지만, 날렵한 헤드램프와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이 주는 인상은 꽤나 이국적이고 매력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가격정책 등의 마케팅은 한국 시장이 홀대받는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대우가 GM에 인수되면서 우리나라가 아시아 생산기지로 전락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사명을 쉐보레로 변경한 것은 GM이 우리나라 정부와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깬 것이다. 대우라는 사명을 유지하고 고용을 승계하기로 했는데, 후자는 어느 정도 지켜진 모양이지만 이름에 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다소 얄팍한 명분을 내세웠을 뿐이다. 동유럽, 베트남 등지에서는 대우(DAEWOO)의 이름값이 꽤 높은데도 그 이점을 모두 포기한 셈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폐쇄하지 않겠다던 군산 공장까지 문을 닫았다. 군산공장에서 생산되던 올란도는 우리나라에서 단종됐고 중국에서 합작회사인 상하이GM을 통해 신형이 출시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도의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눈 감아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용납하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애플이 미워서 아이폰을 안 사고, 삼성 잘 되는 게 배 아파서 갤럭시 시리즈를 구매하지 않는 건 아니다. 쉐보레는 분명 우리나라에서 약간 미운 털이 박혔지만 꾸준하게 팔리고 있다. 2018년 국산차 전체 판매량 1,516,280대 중에서 쉐보레는 6.2%의 판매점유율을 보여 93,294대가 판매됐다. 스파크가 42.7%, 말리부가 16.3%, 트랙스가 13.7% 등의 비중이다. 르노삼성이 중형 체급이 판매량의 상위권에 오른 것에 비하면 쉐보레의 주된 판매 차종은 체급이 작은 편이다. 가격 정책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혹시 차체가 아예 커지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달라질까?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대형 체급의 자동차의 시장이 아직 크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은 유류비가 많이 안 들고 택배가 우리나라만큼 발달하지 않아 개인이 직접 짐을 실을 일이 적지 않은 이유로, 미드사이즈 픽업트럭(전장이 약 5.3m)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며 대형 SUV 역시 제조사에게 많은 매출을 안겨다 준다.

크진 않아도 우리나라의 대형차 시장은 꾸준한 수요가 있다. 포드의 익스플로러는 작년 한 해 6,909대가 팔려 포드에서 판매점유율 80.1%을 차지했다. G4 렉스턴은 16,674대가 판매됐으며 국내 유일의 픽업트럭인 렉스턴 스포츠는 41,717대가 팔렸다. 캠핑은 새로운 놀이가 아니며, 누구나 여건만 갖춰지면 누릴 수 있는 레저활동이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여가생활이 과거보다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시퇴근이 강조되고 육아휴직이 확대되는 사회적인 상황과도 맞물린다. 대형 SUV는 더이상 변방의 강자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쉐보레의 대형 SUV인 트래버스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트래버스는 팰리세이드에 대응하기 위해 출시일을 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트래버스의 크기는 전장 5,189mm, 전폭 1,996mm, 전고 1,795mm로 팰리세이드보다 크다. 2.0리터 가솔린 모델은 팰리세이드 2.2리터 디젤 모델과 경쟁하고, 3.6리터 가솔린 모델은 팰리세이드 3.8리터 가솔린 모델과 경쟁할 듯하다. 미국 본사가 조금만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고 가격 정책을 합리적으로 펼쳐준다면 2019년의 우리나라 대형 SUV 시장의 판도를 기대해 볼 만하다. 포드 신형 익스플로러 역시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

블레이저는 국내 출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들어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쿼녹스와 트래버스의 간격을 채워줄 블레이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을 전면부에 그대로 이식한 모습이다. 주간주행등과 전조등이 분리된 모습에서 싼타페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블레이저가 조금 더 날렵한 인상이 강하다. 크기는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전장이 4,917mm, 전폭이 1,915mm, 전고는 1,745mm로 싼타페보다 147mm 길고 25mm 넓고 전고는 최대 65mm가 높다. 2.5리터 4기통 엔진이 기본이며 3.6리터 V6 모델도 있기 때문에 싼타페나 쏘렌토보다 상품성이 낫다고 판단하는 예비 구매자가 있을 터다. 우리를 우려하게 만드는 것은 쉐보레 자동차가 아니다. 언제나 가격이었다. 블레이저와 트래버스의 국내 출시가는 아직 미정이다.팰리세이드는 출시 전까지, 정확히는 실차 모습이 공개되기 전까지 디자인에 과한 호불호가 꽤 나뉘었지만 가격이 공개된 이후로 여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최근 출시가 지연되면서 안 좋은 이야기도 조금 흘러나오긴 하지만 호화 럭셔리 자동차가 아닌 이상은 가격이 자동차의 인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소비자는 이제 쉐보레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몇 년째 잠재력만 품고 있는 시장은 이제 흘러 넘치기 직전이다. 어쩌다 보니 쉐보레가 자동차 시장의 캐스팅 보트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는데, 합리적인 가격 정책으로 르노삼성처럼 중형 체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 성적이 현대차 등의 다른 제조사를 긴장하게 만든다면 소비자는 앉아서 싱글벙글 웃을 수 있는 선순환의 경쟁고리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