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역대급 자동차 원래 정체 공개되자 모두 소름돋은 이유, “이거 아무도 몰랐겠죠”

“군용차”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어떤 보직이든 간에 한 번쯤은 타봤던 군용차는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을 키워드다. 독자 여러분들은 군용차하면 어떤 차가 먼저 떠오르실지 여쭤본다. K-131의 민수용인 레토나? 아니면 여전히 미군의 사랑을 받는 험비? 혹은 비틀? 이처럼 말한 차는 일부분일 뿐 실제로도 제법 많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받을 수 있을만한 콘텐츠다. 그런 이들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의 콘텐츠를 시작하려 한다. 오늘 알아볼 시간은 군용으로 태어나 민수용으로 판매하니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자동차들을 정리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권영범 수습 에디터

2차 세계대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쿠벨바겐
쿠벨바겐의 후속작
폭스바겐 181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군용차로 활약한 쿠벨바겐의 후속 모델로, 미국에서는 씽 혹은 멕시코에서는 사파리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1960년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유로파 짚(Europa Jeep)이라는 다국적 모델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 모델의 조건은 가볍고, 물과 육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싼 가격에 대량생산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어떤 나라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선뜻 시작하지 않았는데, 점차 이러한 유로파 짚의 계획은 사라지는듯하였다.

이에 고심하던 독일 정부는 자국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국민차를 주로 생산하던 폭스바겐의 뜻과도 일치하였기 때문에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당시 폭스바겐은 북미지역의 수출 증대를 목표를 두고 있었기에, 기존의 베스트셀러인 비틀의 뼈대를 개량하여 보다 나은 내구성과 뛰어난 경제성을 가진 차량을 개발하기로 한다.

이렇게 제작된 폭스바겐 181은 그들이 원하던 내구성, 저렴한 차값, 쉽고 저렴한 유지보수 등을 내세워 1969년 세상에 나왔다. 전 모델인 쿠벨바겐과 같은 RR(리어엔진, 리어 휠 드라이브)구동을 사용하며, 폭스바겐의 스파이더 모델인 카르만 기아의 플로어 팬 (차체의 바닥)과 마이크로 버스의 종감속 기어, 비틀의 엔진 등 기존 모델들의 부품들을 짜집기 하여 생산 공정의 용이성과 비용을 최소화 하였다.

이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에서만 생산되던 181은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1973년부터 생산량을 늘리고, 현지 조달의 편의성을 위해 멕시코에서도 생산을 시작하였다.

민수용 타입 181은 1980년까지 생산하였으며, 군용 타입 181인 1983년까지 생산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험비의 민수용 버전
허머 H1
험비는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의 약자로 현지에서 HMMWV라고 표기하며 읽었다. 미군이 198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군용 차량으로 AM-제네럴사가 제작했으며, 지프에 이어 현대 미군의 수송 차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기존 M151과 지프 계열 차량을 교체하기 위해서 새롭게 도입된 차이었고, 현대 미군의 수송차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미군의 군 전술 차량 중 처음으로 금속 재질 루프탑을 적용한 첫 차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류 자체가 경장갑차다 보니, 지뢰나 RPG-7 등에서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여 전면전이나 게릴라전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량이었다. 지금은 동력 계통과 방어력을 개량한 M998A2를 개발하여 지금까지 사용하는 군용차로 알려졌다.

이후 AM-제네럴은 허머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험비의 민수용 버전인 허머를 내놓게 된다. 1992년 첫 출시를 하였으며, 첫 양산형 모델을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구매해서 큰 주목을 받았으나, 군용차량을 그대로 민수 판매한 모델이라 칭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개선을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첫 출시를 한 해는 재밌게도 크루즈 컨트롤의 부재와 파워 윈도우, 사이드 미러 전동 조절, 심지어 파워 도어락 마저 달리지 않은 채 나왔다. 지프의 성공을 옆에서 바라봤던 AM-제네럴의 기대는 예상과 달리 실적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여줬고, 당시의 미국 내의 사정에서도 어필하기 어려운 극악의 연비 그리고 스쿨버스와 별 차이가 없는 어이없는 차폭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도 마초들만 타는 차로 낙인찍혔다. 단종 이후 다행이도 매니아들 덕에 남겨진 중고차들의 가격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중동에 의해 만들어진
독일제 군용차
G바겐은 엉뚱하게도 중동 때문에 만들어졌다. 1970년대 초 이란 팔라비 왕조의 샤 국왕은 최고의 고급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 벤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군용 4륜 구동 차량을 벤츠에서 만들어준다면 2만 대를 사주겠다는 것이다. 샤 국왕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벤츠의 주식을 상당수 보유했던 주주였던 데다가 중동의 잠재 고객으로부터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자 벤츠는 곧바로 움직였다. 나름의 규모가 있는 사업이었으므로 벤츠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72년 다임러-벤츠는 유럽 최대의 군용트럭을 만들던 슈타이어-다임러-푸흐사와 합작을 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슈투트가르트 시설에서 설계를 맡고,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생산을 맡을 예정이었다. 모크업이 등장한 것이 1973년경이었고, 이미 1974년이 되자 운전할 수 있는 시제차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개발진들은 개발 사실을 극비로 취급하고 사업에는 ‘U-Boot(유보트, 즉 잠수함)’이라는 암호명까지 붙였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겔렌데바겐(Geländewagen)” 즉 G바겐이었다. 벤츠는 G바겐 시제차량을 가지고 철저한 시험평가에 나섰다. 독일의 탄광지대에서 시작하여, 사하라 사막은 물론이고, 남극권까지 다녀왔다.

그라츠에 새로운 생산시설의 건조도 차분히 진행되어 1975년 경 부터는 생산설비가 점차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이 되자 드디어 G바겐은 양산 준비를 마쳤다. 이제 약속대로 샤의 구매를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라비 왕조가 추방됨에 따라 벤츠는 최대의 후원자를 갑자기 잃게 되었다.

비록 이란 계약은 사라졌지만 G바겐은 벤츠의 이름값을 했다. 우선 프랑스가 G바겐을 면허생산하기로 하여 푸조(Peugeot)에서 P4란 명칭으로 무려 1만 3천5백여 대의 양산을 시작했다. 물론 럭셔리 세단과 스포츠카를 만들던 회사에서 4륜 구동 차량을 만들었으니 응당 그 성능을 입증해야만 했다.

1983년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G바겐이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의문의 눈초리는 누그러들었다. 프랑스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이 G바겐을 군용으로 구매에 나섰는데, 가장 인상적인 구매는 로마 교황청이 요한 바오로 2세를 위해 도입한 포프모빌이었다. 한편 제작국인 독일군에서는 정작 1990년이 되어서야 폭스바겐 일티스를 대신하여 군용차량으로 선정되었다.

G바겐은 꾸준히 인기를 끌어 미 해병대도 IFAV(잠정 고속 공격 차량)으로 90년대 도입되어 활약했고, 캐나다 군도 랜드로버를 대신하여 2003년부터 G바겐을 도입했다.

심지어는 이라크전에서는 영국군도 G바겐을 사용했다. 심지어는 북한도 G바겐을 고급 지휘관용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G바겐을 채용한 국가는 60여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K-131의 민수용
기아 레토나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일선 부대, 과거 육군, 해군(해병대)의 대대장급에서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공무 관용차량으로 쓰였다. 즉, 대대 1호차, 사단 1호차 하는 지프들이 바로 이것이다. 군 형식 번호는 K-131로 원 개발사는 아시아 자동차였으나, 아시아 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하였으나 2012년 이후 신규 생산은 중단되었다.

‘이 장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장비임’이 써 있는 패찰이 있다. 볼 때마다 정겨워 죽겠다. 특이한 점이라면 북한군과의 전자전을 염두에 두고 ECU에 전자파 차폐장치를 달아 원자폭탄이나 EMP 탄이 폭발한 상황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기술이 들어간 것은 아니고, 금속망 차폐망을 둘러싸서 접지한 것이다. 단,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1¼톤 등의 다른 디젤 차량들에 비해 등판능력이 떨어진다는 운전병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이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의 특성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운용방식의 미숙에 따른 것이다.

물론 2.0 DOHC 엔진이 넉넉한 힘을 가진 건 아니지만, 여타 마쯔다제 엔진이 그러하듯이 K-131에 달린 FE 엔진은 고회전형 유닛인지라, 저단 기어 고 RPM 운용에는 부족하지 않다. 이런 따스한 기억과 서늘함의 기억을 안겨주는 K-131은 민수용으로 기아자동차에서 레토나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되었고, 군용과 민수용 동시에 개발된 차답게 지프형 SUV에서는 볼 수 없는 경첩형 전면 유리를 채용하였고, 국내 차량 중 순정상태에서 등판 가능 경사각이 가장 높은 정통 오프로더의 성격으로 과거 중고차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원래 당시에는 그 가치를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레토나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지금의 레토나는 디젤의 배출가스 규제로 인하여, 수도권에서 운행이 까다로워 지거나 운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발생이 됨에도 여전히 중고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유는 아직까지 가격 대비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으로 인해 대체할 만한 차가 없다는 것과, 엔진의 빈약한 내구성이 조금 하자인 것을 뺀다면 유지 비용이 저렴하단 점도 레토나 오너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오늘은, 군용차를 베이스로 하여 민수용으로 이어지며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차들에 대해 알아봤다. 아무래도 이런 차들이 사랑받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유행을 타지 않는 터프한 외모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하고, 각 모델들의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지금까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아 온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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