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보배드림 ‘오솔린에무쁘라스’ 님)

양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 음….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양카의 유례부터 찾아봐야 한다. 이 양카의 정의는 바로 ‘앙아치 + 카’의 합성으로 줄여서 양카로 불리게 된다. 이 어원의 유례는 1980년대 후반기 때부터 시작이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들을 상대로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 대중화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자가용은 그 당시 사치품이었던 그때 그 시절은 1980년대 이전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던 시대였다. 즉, 자동차에 대한 생각이 보수적이며 부동산과 함께 가계의 양대 재산목록이던 자동차는 왜 이때부터 양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기아차의 K5가 양카의 3대장으로 손에 꼽히는지 오토포스트는 경건하게 한걸음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권영범 수습 에디터

80년대부터 변화된
양카의 이미지
2021년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양카라고 하면 요란하게 드레스 업된 중고 국산 자동차라는 의미의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이상한 영어가 가득 달린 스티커를 달고 각종 등화류는 틴팅이 되어있어 본래의 색상이 어떤지 구분이 잘 안 가기 시작했다.

머플러는 대포처럼 커다랗고 어디선가 엔진이 깨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부다다닥” 소리를 내뿜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 2000년대 중후반까지 걸쳐진 특징이었다. 인트로에서 서술했지만, 과거 80~90년대부터 양카라는 어원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는 야타족 혹은 오렌지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즉, 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진 = 보배드림 ‘센텀시티주민’ 님)

대우차의 르망을 시작으로 엑셀, 프레스토, 포니 2 등등 젊은 오너들이 늘어나자 드레스업 튜닝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일반적인 부분은 윈도우 틴팅, 범퍼 가드 정도였고, 돈 좀 있는 오너는 오디오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에스페로와 스쿠프, 쏘나타 2, 아반떼를 중심으로 언더네온과 스티커 도배, 스포일러, 애프터마켓 썬루프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앤드 머플러를 교체하면서 배기음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이후 1995년 하이텔의 자동차 동호회 “달구지”에서 최초로 양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무성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기아차의 K5
간단히 양카의 역사와 유례를 알아봤다. 그동안 선대 양카들인 스쿠프를 시작하여, 티뷰론, 투스카니, 포르테 쿱, 제네시스 쿠페가 이룩해온 이미지는 오늘날 K5에게 이어지고 있다. 왜 K5가 양카계의 3대장으로 꼽힐까?

과거부터 쿠페형 디자인을 가진 차량들은 유지비가 엄청나게 비쌌다. 포르테 쿱을 제외한 나머지 차량들은 차값도 차값이었지만, 보험료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감히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사진 = 네이트 뉴스)

이러한 현실에 과거부터 보수적이고 무난한 디자인을 주류를 이뤘던 국산차들을 이용하여 튜닝하는 문화가 발전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근본적으로 누가 봐도 ‘아빠 차’인 거 같은 차들을 이용하여 드레스업을 하기 시작했으니, 기아차 K5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 했을 것이다.

졸지에 선량한 오너들까지
과학자로 만들어버리는 그 차
YF 쏘나타와 그랜저 HG, K7 1세대와 함께 사용하는 Type-N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한다. 파워 트레인은 2.0 및 2.4 세타 2 가솔린과 세타 1 LPi 엔진이 나오게 된다.

변속기는 현대의 파워텍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하였고, 6단 수동 변속기 또한 제공을 해줬다. 사실상 중형차 수동변속기의 마지막 모델이라 보면 된다.

여하튼, 당시 전부 동급 모델인 YF 쏘나타의 파워 트레인과 동일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출시 이후 당시 경쟁 모델 YF 쏘나타를 제치고 2010년 6~8월 중형차 부문 판매량 1위라는 영광스러운 트로피까지 받게 되었다.

당시에 K5는 생산과 내수 물량을 못 따라가서 계약 후 2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반명 YF 쏘나타는 계약 후 1주일 안으로 차량 인도가 가능했을 정도니 그 인기가 실로 체감이 되는 부분이다.

꾸준한
파워트레인 추가
출시한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1년 5월 하이브리드 모델이 국내에 판매가 되기 시작했다. 현대 기아차 최초로 누우 엔진이 적용되었고 이후 순차적으로 엔진을 개량하여 다른 라인업에도 적용하게 된다.

동년도 7월에는 세타 1 LPi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 모델을 단종시키고 누우 LPi 엔진을 적용, 6단 자동 변속기로 변경되었다. 추가로 2.0L 세타 2 GDI 터보 엔진이 추가된 2012년형이 출시되면서 2.4L 세타 2 GDI는 단종의 길로 접어들었고, K5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2.4L 모델이 되었다.

사실, 양카로 꾸준히 명성을 쌓아온 모델은 2.0L LPi 모델이다. 이유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바로 전연령 렌터카 흰색 K5다. 일명 허 넘버의 K5 허이파이브다. 보통 면허를 막 따기 시작한 나이 때부터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는 나이일 때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근본 없는 자신감이다. 왜냐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아직 운전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K5와 YF 쏘나타 특유의 말도 안 되는 초반 악셀 리스폰스는 “아! K5는 잘나가는 스포츠카구나!”라고 오해하기 십상인 차다. 그러다 보니 이 마약과 같은 리스폰스에 취해 풀스로틀을 재촉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많이 빈약한 순정 브레이크는 운전자의 담력을 키워주는데 아주 큰 공헌을 세운다. 이러다 보니 양카의 비율이 확률적으로 K5가 더 많다고 느끼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이다.

(사진 = 보배드림 ‘HCC32’ 님)

아직도 그만한
차가 없었다며 그리워한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양카의 새로운 역사 K5에 대해 알아봤다. 불법행위나 운전 매너가 정말 좋지 않았던 K5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얌전히 타고 다니는 오너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오너들이 가끔씩 보이지만 이제 차 연식도 연식인지라 이제 1세대 K5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며 그의 뒤를 3세대 K5가 이어나가려 할지 아닐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K5가 출시된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 버렸고 K5가 사회에 공헌한 양카 이미지는 결국 전설로 남게 되었다. 멀쩡한 사람도 이 차를 타는 순간 변해버린다는 마성의 K5는 2세대 JF를 거치면서 현행 3세대 DL3까지 왔다. DL3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나왔음에도 가끔씩 1세대 K5의 디자인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할 정도니 과연 K5의 디자인은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디자인 판도를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훗날에 디자인의 기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앞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디자인으로 곁에 남아줬으면 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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