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벤츠는 부자 중에서도 극소수만 탈 수 있었다. 지금은 흔한 그랜저도 당시에는 국산차 중에서도 최고급이었으며, 강남 아파트 한채와 맞먹을 정도로 비쌌는데, 그 그랜저보다도 몇 배나 비싼 벤츠는 그야말로 끝판왕이었다. 거기다 단순히 가격만 비싼 것이 아니라 기술력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오버테크놀러지의 절정이라고 불렸던 시기였다.

벤츠가 많이 흔해진 요즘도 전 세계적으로는 가장 인정받는 브랜드 중 하나이지만 예전만큼의 명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이 점점 퇴보하고 있으며, 국산차 옵션이 많이 좋아지면서 벤츠에 적용되는 옵션도 이제는 그저 그렇다고 평가받고 있다. 거기다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회사 슬로건과는 달리 요즘에는 결함 문제도 꽤 나오고 있다.

글 이진웅 에디터

상류층 위주로 차를 팔아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벤츠
지금도 벤츠는 고급차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욱 브랜드 가치가 높았다. 물론 그때도 벤츠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롤스로이스나 벤틀리가 있긴 했지만 벤츠도 당시에는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브랜드 가치가 높았다.

벤츠는 오래전부터 상류층을 대상으로 차 값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해왔다. 벤츠를 탄 상류층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이것이 다른 상류층들에게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상류층 사이에서는 너도나도 벤츠를 구입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인물로 히틀러가 있는데, 벤츠보다도 고급이었던 마이바흐를 선물로 받았지만 이를 벤츠 770k(현재의 S클래스 마이바흐 풀만과 동급)로 교체해달라는 요청을 한 적 있었으며, 이후 어딘가로 시찰을 나갈 때 항상 그 770k을 타고 갔다고 한다.

벤츠의 프리미엄 전략은 전 세계 유명인들에게 잘 먹혔다. 위에서 언급한 히틀러는 물론이고, 각국의 정상들이나 연예인들이 벤츠를 의전차로 활용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벤츠는 꿈의 자동차라고 불렸으며,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지금이야 BMW, 아우디가 벤츠와 동급으로 취급받지만 옛날에는 벤츠가 이보다 더 고급으로 인정받던 때였다.

차의 기본기 중 하나인
내구성이 매우 훌륭했다
벤츠는 단순히 차를 비싸게만 팔아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은 아니다. 단순히 가격만 비쌌다면 아무도 차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벤츠의 높은 브랜드 가치에는 비싼 가격에도 차를 구매할 만한 메리트가 분명히 있기 있기 때문이다.

그 메리트 중 하나로 우수한 내구성이 있다. 벤츠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역사를 함께 할 정도로 오래된 회사인데, 오랫동안 차를 연구하고 만들어 온 만큼 노하우가 상당하다.

W124 E클래스는 수류탄을 엔진룸에 넣고 폭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동이 걸렸으며, E320에 적용된 3.0리터 디젤엔진은 200km/h 이상의 속도로 무려 16만 km 연속 주행을 견딘 공인 기록이 존재한다.

국내에서 벤츠의 내구성은 쌍용차를 통해 입증되었다. 쌍용차가 벤츠와 제휴해 구형 엔진과 단종된 W124 E클래스 플랫폼을 제공했다. 당시 출시되었던 무쏘, 뉴코란도, 체어맨, 이스타나는 내구성이 매우 훌륭하기로 유명하며, 지금도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한국도로공사 역시 1994년 처음 무쏘를 구입한 이후로 훌륭한 내구성에 감탄해 지금까지 쌍용차를 주로 구입한다. 무려 100만 km를 무보링으로 달려 내구성을 입증했다.

안전에 대해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
벤츠는 단순히 차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승객 안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벤츠는 1939년 자동차와 관련해서 2,500여 개의 특허를 보유했던 엔지니어 벨라 바레니를 영입해 무사고 주행이라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개발을 했다.

미국 IIHS, 유럽 NCAP가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충돌 테스트 역시 벤츠가 1959년 처음 실시했다. 당시 공장에서 막 생산한 차를 목재로 만든 고정벽에 정면충돌시키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또한 전복 사고를 재현해 안전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80km/h 정도로 달리던 차가 코르크스크류 램프를 통해 차를 뒤집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후 1960년대부터는 승용차뿐만 아니라 밴, 트럭, 버스 등 벤츠가 생산하는 모든 차에 충돌 테스트를 확대 진행했으며, 1973년에는 최초의 실내 충돌 테스트 시설을 개소하기도 했다. 1975년에는 실제 충돌 상황과 유사한 테스트를 위해 전면의 일부분만 구조물에 충돌시키는 오프셋 충돌 테스트를 제안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허니콤 구조의 변형 가능한 금속 장애물에 60km/h 속도로 50% 오프셋 충돌 테스트 방식을 선보였으며, 이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안전 기준을 자체적으로 정하기도 했다.

충돌 테스트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장치도 벤츠가 개발하거나 대중화했다. 대표적인 사양으로 에어백이 있다. 1971년 벤츠에서 처음 개발했으며, 특허권료를 받지 않고 모든 자동차 제조사에 기술을 공개했다. ABS는 보쉬에서 처음 개발했지만 벤츠가 대중화시켰으며, ESP는 벤츠와 보쉬가 1995년 공동 개발했다. 특히 이 세 가지는 국내 기준으로 생산되는 모든 차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 외 충격력을 줄여주는 크럼블 존은 무려 1959년에 벤츠가 개발한 기술이다.

고급차에 걸맞은
중후한 디자인
지금은 시대가 변하면서 벤츠 디자인도 유선형의 젊은 디자인에 실내는 미래지향적이지만 옛날 벤츠는 일명 각벤츠라고 불릴 만큼 상당히 각진 모습이었으며, 벤츠 주 소비층들이 중장년층이다 보니 디자인도 중후했다.

당시 각벤츠가 주는 중후한 인상은 고급스러움의 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를 기억하는 중장년층들은 지금도 각벤츠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 외 구름 위를 떠다니는듯한 승차감과 다른 브랜드 차량에는 없던 당대 최신 옵션 사양을 적용하는 등 옛날 벤츠는 그 어떤 차와도 비교를 거부하는 우수성을 자랑했다.

지금도 인정받는 브랜드지만
옛날보다 많이 흔해진 벤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벤츠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명성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 국내만 봐도 수입차가 대중화되면서 벤츠가 너무 흔해졌다. 특히 올해 상반기는 벤츠가 르노삼성, 쌍용차, 쉐보레보다 더 많이 팔렸으며, E클래스는 올해 상반기 전체 19위를 차지했다.

너무 흔해지다 보니 옛날에는 넘사벽 브랜드였던 벤츠도 이제는 그저 그런 브랜드 정도로 인식이 확 바뀌어버렸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중장년들 사이에서는 너무 흔해진 탓에 옛날 각벤츠때가 최고였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물론 벤츠도 기업인 만큼 이익 추구를 위해 차를 많이 판매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 벤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차를 개발하기 위해 드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결함
벤츠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The Best or Nothing을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장이나 전시장은 물론 심지어 번호판 가드에도 이 슬로건을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벤츠는 품질을 중시하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결함이 꽤 많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벤츠의 몇몇 차종에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적용되어 있는데, 배터리 문제로 시동이 꺼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를 겪은 차주들은 고가의 프리미엄 차량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작년에는 벤츠의 배출가스 조작 논란으로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무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배출가스를 조작해 차를 팔아왔다. 독일에서는 2017년부터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받아왔지만 국내에서는 뒤늦게 이 사실이 확인되는 바람에 2020년이 되어서야 이슈가 된 것이다. 이후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진행했지만 당시 벤츠코리아의 실라키스 사장은 이미 출국했으며, 10월에 미국법인 CEO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면죄부 인사를 한 셈이다. 벤츠코리아는 776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그 외에 신차에서 스태빌라이저 링크가 빠진다든지, ISG 결함으로 국내 최초로 레몬법을 적용받는다든지, 연비를 과장한다든지, 비상 통신 시스템 문제, 배선 문제 등 크고 작은 결함이 많이 발생했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다.

배짱 장사 및
AS 관련 문제
벤츠는 오랫동안 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배짱 장사를 해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전 E클래스는 일부 물량에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일부 옵션을 삭제한 채로 판매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사전 고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슈가 될 당시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빠진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2018년형 E클래스는 가격이 인상되었는데, 오히려 옵션이 빠졌다. E300은 파노라마 선루프 대신 일반 선루프가 적용되었고, E400은 에어 서스펜션이 빠지고 DMB와 아이패드 거치대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파노라마 선루프 혹은 에어 서스펜션을 선택하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인디 오더를 해야 된다.

2019년 출시된 GLE는 9천만 원이 넘는 가격을 책정하면서 옵션을 대거 뺐었는데, 이때 옵션이 대거 빠진 이유에 대한 질문에 벤츠코리아는 한국에 최적화된 사양을 맞춰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답해 논란이 되었다. 2020년 E클래스 페이스리프트 중 E350 AMG 라인은 엔트리인 E250에도 있던 전동시트가 일부 물량에 빠져 있었으며, 전동 스티어링 휠 틸팅이나 메모리 시트 등은 전량 빠졌다고 한다.

심지어 인증 신고 없이 차를 팔다가 피소된 적도 있었다. 국내에 팔던 S350d는 7단 변속기가 장착되어 있는 걸로 인증된 상태였는데, 실제로 판매한 차는 9단 변속기였다. 실정법을 무시한 채 국내 시장을 질주하는 벤츠의 안하무인식 행태로 논란이 되었다.

에어백에 문제가 있어 국토부는 리콜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1년 넘게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했었다. 또한 국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리콜을 진행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벤츠는 오랫동안 수입차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2019년에는 한해 매출 5조 원 이상, 영업이익 2,18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 바빴으며, 재투자는 거의 없었다. BMW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단 한 푼도 배당하지 않고 한국 시장에 꾸준히 투자하며, 한국에 있는 협력업체와 조 단위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벤츠는 내연기관차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전기차 분야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GLC를 기반으로 처음으로 선보인 전기차 EQC는 기대에 못 미치는 주행거리로 크게 혹평 받았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판매가 부진한 상태다. 오죽하면 독일 언론도 총체적 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이런 악평은 1세대 A클래스 이후로 처음 나온 반응이었다.

최근 출시된 EQA는 EQC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벤츠 엠블럼이 붙어있다는 것 외에는 타 전기차와 비교해 딱히 구매할 메리트는 못 느끼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타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점차 성과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벤츠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이번 달부터 정식 출시되는 EQS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하고 내연기관 S클래스급의 상품성을 갖췄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요즘 벤츠는 옛날에 비하면 명성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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