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피그. 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듣자마자 설레는 단어로 손꼽히는 그 이름. W109 300SEL 6.3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전설적인 녀석은 AMG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태어난 녀석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관계가 이어지게 만들어준 일동공신이다. 원래의 AMG는 다들 아시다시피 벤츠 출신의 엔지니어가 따로 나와 차린 튜닝업체였단 사실은 익히들 알고 계실 것이다.
자, 오늘 이 시간은 AMG의 역사와 레드 피그가 어떤 녀석인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한때 국내에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레플리카가 국내에 들어와 업계에서 굉장한 이슈거리였던 녀석인 만큼, 오늘 다루고자 하는 내용도 AMG와 레드 피그,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까지 속해지기까지 일대기를 그려보고자 한다.
글 권영범 에디터
튜닝에 열광하는 청년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
AMG의 창립자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 (Hans Berner Aufrecht)는 모터스포츠에 푹 빠진 청년이었다. 특히나 그가 열광하고 그의 주 종목인 튜닝은 기존 차량들보다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는 데에 관심이 높았으며, 본인의 기술력 또한 뛰어났다.
그가 당시에 근무하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시 르망 24시의 흑역사를 가졌던 시기였고, 최고 경영진들 또한 모터스포츠로 다시 데뷔하기를 몹시 꺼려 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 그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질 않았고, 그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싶어 했었지만 결국 퇴사하는 순간까지 기회는 오질 못했다.
결극 1967년에 퇴사를 마음먹은 아우프레히트는 그의 형인 프리드리히(Fredrich)와 에르하르트 메르셔(Erhard Mershcer)라는 인물의 지원을 받아 독일 부르그스톨에 있는 작은 공장부지를 사들였고, 그 공장에서 레이싱 엔진의 개발과 테스트를 하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그 회사가 오늘날의 AMG의 모태다.
AMG의
사과나무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AMG의 마크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사과나무와 캠축이 마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냥 그려져 있는 게 아닌, 꽤나 뜻깊은 이유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사업을 시작했으니, 사업자명을 정했어야 했던 그들은 두 창업자의 이름 첫 자를 따서 A와 M 그리고 그들의 고향인 ‘그로사스파흐(Großaspach)’ 지역의 ‘G”를 따서 지었다. 여기에 사과나무 심볼 또한 그들이 사들였던 공장부지가 원래는 사과밭이었고, 엠블럼의 디자인 또한 여기서부터 착안된 것이다.
300SEL로
끝을 본 그들
벤츠를 바탕으로 강력한 성능을 더한 AMG는 모터 스포츠계에서 빠르게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자리를 잡아나가기도 했다. 강력한 성능과 신뢰성을 바라는 이들은 곧바로 AMG를 찾기 시작하였다.
당시 현지 언론에서도 “AMG는 벤츠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벤츠도 고성능 모델을 내놓게 만들 것”이라며 최고의 호평이 연이었다.
이후 AMG는 완벽하게 튜닝회사로 자릴 잡는데 성공하였고, 이들은 1968년 300SEL 6.3을 내놓았다.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답게 V8 6.3L 엔진을 얹고 최대 출력 250마력을 내는 당시로써 괴물을 만들어 냈지만, 그들은 더한 것을 원했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한 무언가를 갈구하던 그들은 V8 6.3L 엔진이 달린 300SEL 6.3모델을 기반으로 한 녀석을 만들어내는데, 그 녀석이 바로 레드 피그다.
1971년 벨기에
스프랑코샹 서킷에 나타난
강력한 돼지
이후 3년 뒤인 1971년, 벨기에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24시간 내구 레이스가 개최되었다. 레이스 하면 언제나 AMG가 빠지면 섭섭하던 시절, 당연히 그들도 참가를 하였고, 그날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빨갠색 세단이 들어왔다.
기존 V8 6.3L 엔진에서 6.8L 엔진으로 더 커진 엔진이 눈에 들어온다. 최대 출력 434마력을 내는 이 녀석은 당시에 참가하였던 팀들에게 경악을 안겨줬다. 이유인즉, 사실 레이스 카 치고 차가 너무 컸었다.
4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S클래스로 레이스 카를 만든다고 하면 상상이나 가겠는가?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정말 충격 그 자체였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 300SEL 6.8 AMG는 곧바로 ‘레드 피그’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하지만 그 별명이 무색하리만큼 엄청 빠른 녀석이었다.
결국 이번 내구 레이스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고, 클래스 우승을 거두면서 성능을 입증해낸 AMG는 이후 착실하게 회사를 키워나갔고, AMG의 고성능 차량들의 수요 또한 전에 비하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늘어났다.
300SEL 6.3을
기반으로 복원된
레드 피그
아쉽게도 오리지널 레드 피그는 당시에 총 5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대는 핀란드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4대는 전투기 랜딩기어 시험을 위해 분해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그 차가 그날의 공기, 그날의 열기를 머금은 채 복원되어 돌아왔다. 독일 클래식 모터스의 아서 베첼에 의해 만들어진 이 레플리카는 1969년식 300SEL 6.3 무사고 차량을 매입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원작 그대로 재현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차는 한국의 어느 오너가 차량을 가져왔고, 한국 땅에서 총 1,000km여 가량 운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국내 중고차 포털사이트에 매물로 나왔으나, 선뜻 사려고 하는 이들이 없어 RM 소더비에 올라갔고, 결국 한화로 약 5억 원에 팔려나갔으며 그 이후의 행방은 묘연하다.
보통 클래식카를 경매에 내놓게 되면 추정 가보다 조금 더 얹히는 방식으로 낙찰이 되는 게 대다수다. 이 당시 레드 피그는 추정가 150,000유로~200,000유로 사이로 책정되었지만,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432,500유로에 팔렸으니 보통 일이 아닌 건 확실했다.
AMG의 진정한 매력은 워크스 튜너의 장점을 한껏 살린 커스터마이징이었다. 차주의 주문에 따라 세세한 부분까지 튜닝하여 내놓기로도 유명했던 AMG. 독일의 머슬카라고 불렸던 만큼 중후하고 박력 넘치는 호랑이 사운드가 많이 희석되었으며, 과거 웬만한 라인업은 전부 다 1인 1엔진 조립으로 전담 생산제를 시행했었으나, 그 라인업마저 많이 줄어들어 그들만의 매력이 사뭇 그리워질 때가 더러 있다.
아무래도 다운사이징과 더불어 모듈화가 되어가는 플랫폼과 엔진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AMG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안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일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들만의 혼이 담겨진 차를 내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은 AMG의 역사와 레드 피그를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