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퓨처에 나온 그차
드로이언 DMC-12
시대를 풍미한 슈퍼카

서울 어디선가 발견된 DMC-12 / 네이버 남차카페 ‘박종운’님 제보

DMC-12는 들로리언 모터 컴퍼니의 최초이자 마지막 생산 차량이었다.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 덕분에 매니아층이 생겨나 오늘날에 와서는 프리미엄이 한껏 붙어, 웬만한 가격대가 아니고서야 쳐다볼 수도 없는 차가 돼버렸다. 그런 DMC-12가 최근 국내 공도에서 발견되어 화재가 되고 있는 중이다.

들로리언 모터 컴퍼니는 과거 GM에서 고속 승진의 대가로 불리던 존 재커리 들로리언에 의해 만들어진 자동차 회사다. 고리타분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과, 파격적인 걸 선호하는 그는 보수적이고 개성이 없던 미국차 시장에 회의감을 느꼈고, 결국 잘 다니던 회사를 집어치우고 본인의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지만…. 그에게 있어 어쩌면 건너선 안될 강을 건너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늘 이 시간은 DMC-12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보자.

 권영범 에디터

GM에 근무하던 시절의 들로리언

폰티악 파이어버드와
그랑프리 그리고 GTO의 아버지
존 재커리 들로리언. 그는 1925년 1월 미국 자동차의 본고장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자라났는지 정보는 없지만, 분명한 건 어떠한 연유에서든지 차를 좋아했던 이는 틀림없었던 듯하다. 1950년대 패커드 모터스에서 근무를 하다가 1959년 GM의 디비전인 폰티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의 창의성과 혁신적인 마케팅, 그리고 놀라운 사업감각은 밑바닥을 치던 폰티악의 시장점유율을 6.4%까지 끌어올리며 TOP3 순위까지 끌어올리게 한 장본인으로 손꼽힌다. 그의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파이어버드, 그랑프리, GTO 등 명차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고, 1970년에 들어서서 쉐보레로 스카웃되었다.

쉐보레의 판단 또한 탁월했다. 전체 판매량 300만 대를 기록하면서, 쉐보레 차기 회장 후보까지 올라간 그였지만, 1973년 그가 바라본 미국 자동차 시장은 너무 고리타분하였고 그가 만들고자 하는 차를 만들기엔 제약이 따랐다.

결국 안정적이고 탄탄대로를 달리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그가 꿈꾸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GM에 재직하던 시절에 동료였던 빌 콜린즈, 로터스의 창시자인 콜린 채프먼과 함께 손을 잡고 영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DMC라는 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들로리언은 제아무리 부사장직을 맡았던 중역이었다 한들, 공장부지를 선택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데 있어 금전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다. 이러던 와중에 뜬금없이 영국정부가 그에게 선뜻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게 된다.

그 조건은 바로 북아일랜드 소재의 소도시 던머리에 공장부지를 무상으로 제공, 건설 비용 지원, 추가로 세금 감면까지, 꿀이 뚝뚝 떨어지는 조건에 연속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바로 의심부터 해야 정상이겠지만, 들로리언은 상황을 따질만한 처지가 아니었음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영국정부가 그에게 선뜻 호의를 베푼 것은 꽤나 치밀한 계산에서부터 비롯된다. 당시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었으나, 국가 내부에 독립 세력들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영국의 입장에선 꽤나 골칫거리였고, 당시의 북아일랜드 또한 실업난이 심각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연막작전이 필요로 했는데, 시기상으로 들로리언의 창업 소식은 영국에게 있어 굉장한 기회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내막을 뒤로한 채 결국 영국정부와 손을 잡게 된 들로리언. 앞으로 그에게 닥칠 불우한 미래를 뒤로한 채 순조롭게 사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다
DMC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고 난 뒤 회사에 속한 인물들의 라인업은 최강 그 자체였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다듬은 미래지향적 디자인, GM의 실세였던 들로리언, 경량 스포츠카의 달인 채프먼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하자 당시의 미디어들은 그야말로 포화 그 자체였다.

DMC-12의 컨셉은 샌드위치식 패널에 반켈 로터리 엔진을 얹길 원했다. 하지만, 엔진 공급처였던 코모터 SA가 엔진 생산을 중단하게 되자 공급받을 길이 막혀버렸고, 그 대안책으로 포드의 엔진을 얹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Peugeot-Renault-Volvo 3사 합작 공동 개발 엔진인 V6 PRV-인젝션 엔진이 얹히는게 확정되었다.

이후, 생산 비용을 낮추고자 앞서 전술했던 플라스틱 구조의 프레임을 만들어 생산하길 원했으나 당시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고, 생소했으며, 기대치만큼 퍼포먼스가 나와주질 않아 이 프로젝트는 전면 폐기가 되었고 보다 못한 콜린 채프먼이 로터스만의 전매특허 백 본 프레임을 제공해 주며 일단락되었다.

익스테리어 또한 플라스틱 패널을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프레임의 기술적 문제로 플라스틱 프레임과 함께 전면 폐기가 되었다. 그 대안으로 스테인리스 스틸로 재질을 변경하였고, 페인트 점착성 문제를 운운하며 색상선택 옵션은 아예 제공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순조롭게 진행되어 출시일만을 기다리면 될듯하지만,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차를 만들겠단 욕심과 시대를 앞서나간 디자인과 자동차의 구성은 트러블만 야기했다.

들로리언은 계속해서 개선이 될 때까지 출시일을 미루는 지경까지 이르게 돼버리고 마는데, 영국 정부는 이러한 DMC가 맘에 들지 않았다.

끝내 기다리다 못한 영국정부는 “자꾸 미뤄지면 더 이상 자금을 대줄 수 없다”라며 못을 박아놨고, 그 압박에 못이긴 들로리언은 해선 안 될 짓을 하게 돼버리는데…. 그건 바로 시제품을 그대로 출시해버리는 것이었다.

출시 초반의 인기는 상당했다. 경영진의 액면가로만 보아도 화젯거리가 충분했기에 오일쇼크로 인해 침채되었던 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못가
결함이 터져 나오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출시된 지 얼마 채 되지 않아 크고 작은 결함들이 속속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초반에 붐을 일으키던 민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대표적인 결함으로는 웨더스트립의 패킹 불량으로 인한 누수, ECU의 메모리 용량 부족으로 인한 쇼트 혹은 다운, 스테인리스 스틸의 후처리가 미흡하여 특정 부분의 부식 혹은 백화현상 등등 과연 이게 자동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결함이 심각했다. 심지어 공장의 조립공들 또한 숙련도가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높게 책정하여 운영함과 동시에 품질 문제로 무상 보증 연장까지 더해져 손해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성능조차 미국 연방 배출가스 규제에 맞추면서 출력이 대폭 하락했다. 범퍼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차고를 한껏 치켜 올린 탓에 운전대의 감각 또한 하락하여 생긴 것과 달리 느려터진 녀석이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난리가 나버린 DMC. 뒤에서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영국 정부는 재빠르게 손을 때 버렸고, 홀연히 사업에 철수해버리는 상황까지 맞이하게 돼버린다.

체포되기 직전 그의 모습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파산 위기에 내몰린 들로리언. DMC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지인부터 시작하여 각종 은행과 기관까지 들쑤시며 회생 자금을 구하기 시작했고, 다방면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미 민심이 돌아버린 회사에 누구 하나 선뜻해주겠단 이는 없었다. 아마도 여기에 지쳐버린 탓이었을까 들로리언은 마약에 손을 대버리고 마는데, 이도 얼마 가지 않아 FBI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다만, 불과 며칠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재판 과정에서 FBI의 실적을 위해 꾸며진 함정수사란 게 밝혀지고 나서였다.

이 같은 부정행위가 밝혀지게 되자, 들로리언은 2년 뒤 최종 재판에서 무죄판견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무죄인 게 밝혀지고 회사로 돌아왔을 땐 파산하고 아무것도 없는 회사였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했던가? 영화를 통해 뒤늦게 인기몰이를 한 DMC-12는 회사가 망해서 없어지고 고작 2년 뒤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하자 덩어리 스포츠카’라는 오명과 함께 관심조차 못 받던 DMC-12는 영화 개봉과 동시에 굴곡진 비하인드스토리가 공개되었지만, 신차 출고량이 채 1만대로 되지 않은 판매량과 그 초라한 판매량이 유럽과 미국에 각각 분포되어 이미 귀해질 대로 귀해진 몸이었다.

이미 20년도 더 된 세월부터 가치가 오를 대로 오른 녀석인지라, 쉽게 구할 수도 없는 녀석이었지만, 2007년 어느 날 DMC-12는 스티븐 와인이라는 사업가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DMC 공장에 남아있는 부품을 모조리 사들여버린 그는, 회사를 새롭게 뜯어고쳤다. 그리고 첫 스타트는 리스토어의 목적성이 강했었다. 정품 부품을 다시 만들고 생산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 움직였으며, 공급망을 자처해 팬들과 오너들의 사랑을 받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2016년 미국 소규모 기업의 자동차 생산 법안이 개정되고 나서 생산 사업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고, 2017년 300대 한정판으로 재생산을 감행하여 완판을 일궈내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였다

서울 어디선가 발견된 DMC-12 / 네이버 남차카페 ‘박종운’님 제보

스티븐 와인을 필두로 차려진 회사는 점차 덩치를 키워나갔고, DMC-12의 부품 판매와 리스토어 사업, 그리고 정비 사업까지 서비스 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미국 내에서 3개의 지점을 오픈하여 꾸준한 사업을 영위하는 중이고, DMC-12의 진입장벽을 한층 더 낮추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결국 들로리언이 못 이룬 꿈을 팬이자 사업가였던 한 사람에 의해 다시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정판으로 재생산된 DMC-12는 말 그대로 ‘새치’라는 프리미엄이 붙게 되어 가치가 더해졌고, 미국 내에서 운용하기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평가되었던 당시의 시대에 비해 꽤나 좋은 말년을 보내는 DMC-12. 국내에 존재하는 녀석은 과연 한정판 새차일지, 리스토어된 그 시절의 DMC-12일지는 알 수 없지만, 국내에도 참 의미 있는 차가 존재함에 감사함을 표하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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