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갤로퍼, 미쯔비시 가져와 만든 역작
아이오닉 5 통해 뉴트로 가능성 선보여
21세기 현대판 오프로더 가능할까?

현대 갤로퍼, 정확하게는 현대정공 자동차 사업부에서 조립하여 현대자동차 영업망에서 판매가 된 국내 오프로더의 명장이다. 명장이라 불리는 것도 그럴 것이 현대차가 독자 개발하여 처음 내놓은 차량이 아닌, 일본에서도 90년대 초반~후반기까지 3대 명차로 손에 꼽혔던 1세대 파제로를 들여와 OEM 생산을 했던 모델인 만큼, 그 내구성과 성능은 설명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런 명작인 녀석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단종된 지 18년이 넘은 차를 이토록 그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갤로퍼만의 특별한 무언가 존재하는 것일까? 당시 쌍용차와 아시아자동차만 다루던 영역인 4WD SUV 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던 갤로퍼, 오늘 이 시간 갤로퍼에 대해 알아보고 갤로퍼의 부활 가능성이 존재할지 알아보자.

 권영범 에디터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의 시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3低(저) 호황을 누리게 된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도 향상되어 레저의 붐이 일어나는 시기로, 이 당시 80년대 후반기는 쌍용차의 새로운 SUV 코란도 훼미리, 기아차의 봉고 9 그리고 베스타가 대한민국의 레저문화를 책임지고 있었다.

쌍용의 레저문화의 미래를 내다본 능력은 탁월했고, 봉고의 각종 다양한 라인업은 이미 잘 팔렸던 와중에 80년대 장한평의 효자 상품으로 감가상각이 적은 모델이었으며, 베스타의 인기도 꽤나 먹혔던 시절이었다.

이에 현대정공은 4WD SUV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마침 같은 그룹인 현대차 또한 4WD 모델 제작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던 탓에 영역 출동 또한 없었다. 현대차 그룹의 총수 ‘정주영’회장 또한 필요성을 느꼈기에 정 회장의 4WD 사업 진출에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받고 출발하게 된다.

초기에 갤로퍼는 미국의 지프와 합작을 통해 고유모델을 생산하는 방향이었다. 당시 현대차는 국산화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시기였기에, 그동안 세단 사업에서 축적해온 기술을 통해 국산 부품을 활용하여 시제품을 개발하여 만드는데 까진 성공을 했다. 하지만 수출까지 염두에 둔 모델답지 않게 결과는 대실패였다. 구조가 복잡해지고, 높은 품질과 강성이 요구되는 설계 특성과 북미 시장의 소비자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급격한
전략 변경
이미 북미에는 지프라는 거대한 내수시장이 존재하고, 포드와 쉐보레 또한 익스플로러와 서버번이 자릴 잡고 있어, 이대로 내놨다간 5년도 못 버티고 수장될 게 불 보듯 뻔했다.

결국 현대정공은 “신뢰성이 높은 바디를 들여오자!”라며 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이후 라이센스 생산을 사방팔방 알아보게 되는데, 결국 또다시 문을 두드린 데가 바로 미쯔비시다.

사실 현대정공의 입장에서도 완성도가 낮은 차를 내놔 시장 진출에 난항을 겪을 바엔, 차라리 라이센스 방식의 모델을 생산하여 기술을 축적하고,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진출하는 편이 이득이란 판단하에 이뤄진 결과값이었다.

이미 80년대 후반기의 미쯔비시는 2세대 파제로를 내놓기 위해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미 1세대 파제로에서 단물은 다 빼먹은 미쯔비시 입장에선, 현대정공의 기술제휴는 오히려 반가운 희소식이었고, 1989년 10월 양사 간의 사업 추진 의향서를 교환한 뒤 1990년 3월 본격적인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첫 출시 이후
3개월간 3,000여 대 판매
첫 출시를 한 1991년, 그리고 첫 출시 이후 3개월 동안 갤로퍼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한 달 단위로 1,000여 대의 계약이 성사되었고, 쌍용의 코란도 훼미리,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는 단숨에 제압되버리고 만다.

쌍용의 코란도 훼미리는 프랑스산 푸조 엔진, 일본의 이스즈 엔진, 미국의 지프 가솔린 엔진을 무작위로 섞어 쓰던 시절인지라, 신차인 상황에서도 부품 수급이 썩 원활하지 않았고, 1990년에 출시한 K-111의 민수용 버전인 록스타는 크기도 작고, 잔고장이 심했으며, 내구성도 하자가 많았던지라 신차효과도 별로였다.

갤로퍼의 경우 자동차 세계시장의 최고 히트작인 파제로와 싱크로율이 99%에 달했을 정도였고, 실제로 1991~1992년산 갤로퍼는 트랜스미션 하우징에 MMC가 적혀있을 정도였다. 이러하다 보니 성능과 신뢰성은 이미 압도되어 게임이 안되는 상황이 돼버리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이 당시 대한민국의 시대 배경은 국산 공산품보다 일본제 혹은 미국제 공산품을 훨씬 더 가치를 후하게 쳐주던 시절이었다. 입소문이 전부이던 시절에 갤로퍼의 뒷배경을 이미 알고 있거나, 일본 쪽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이들은 이 차가 어떤 차량인지 한 번에 알아봤고, 곧바로 판매량으로 직결되기 시작했다.

리스토어 된 갤로퍼 / 모헤닉 게라지스

리스토어
붐을 일으킨
첫 번째 모델
지금은 없어진 모헤닉 게러지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은가 여쭤본다. 한때 리스토어를 진행할 갤로퍼 베이스 카를 사들여 새 차처럼 복원해 내는 사업을 했던 모헤닉 게러지. 이들을 필두로 리스토어 산업이 한순간에 부흥한 것은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다.

각지고 아담한 롱 베이스 모델을 시작으로, 몽당연필을 닮은 2도어 숏바디 모델까지 모두 그들만의 감성으로 버무려 한때 큰 인기를 받았던 갤로퍼, 이후 갤로퍼의 가치는 급격히 상승하였고, 상업적인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리스토어 된 갤로퍼 / 모헤닉 게라지스

기본적으로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 판매가 되고 있는 갤로퍼 1세대의 경우 최고 매매가가 가솔린 모델 기준 3,700만 원에 호가하고, 비교적 허름한 상태의 갤로퍼도 최소 330만 원의 금액대가 설정되어 있다.

즉, 다시금 레트로한 디자인을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 디자인이 오늘날에 와서 큰 주목을 받고 각광을 받자, 갤로퍼의 디자인 또한 재평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상업적인
모습에 비판도 이어져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누가 봐도 당장 운행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만 수리해놓고 “특A급 상태임을 강조”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사태가 발생되기도 한다. 과거 뉴트로 디자인의 초창기인 2016년 당시를 시작으로, 중고차 매매상을 막론하고 개인 간의 거래에서도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했다.

이를 제제할만한 법규는 당연히 존재치 않았고, 한때 모헤닉 게러지에서 베이스 카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1세대 갤로퍼를 한참 동안 마구잡이로 사들인 역사와, 구매를 했다 하면 차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못하는 오너들 덕분에 오늘날에는 순정상태의 갤로퍼를 보기가 힘들어졌고, 파스텔 톤의 갤로퍼가 즐비하게 된 계기가 된다.

시세가 없는 오래된 중고차의 경우 오너가 판매하는 게 곧 시세가 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대가 형성되었다며 네티즌들의 비난이 존재했다.

지금에 와서는 제법 그 가치를 인정받아 가격 면에서의 비판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대와 가치를 몰라보는 이들 사이에서 논란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배출가스 등급에서 자유로운 휘발유 모델의 경우 웬만한 중형차값을 호가한다.

아이오닉 5처럼
뉴트로 디자인의
전기차 나올까?
말이 잠시 딴 데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현재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갤로퍼와 같은 SUV를 원한다!”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적절한 예시로 아이오닉 5를 예시로 들 수 있겠다. 현대 포니 시리즈를 오마주 하여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올드 카 향수가 남아있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특히나, 젊은 층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컨셉카와 동일하게 나와 호평을 받았다. 결국 디자인은 돌고 돈다고 했다. 과거 명작들의 재해석은 오늘날의 소비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고, 현대차는 실험적인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에 네티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쌍용차는 답도 없네 이제”, “현기차 싫지만 희망은 여기뿐이다”, “가면 갈수록 차를 못 만드는데 뭘 기대하지?”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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