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퓨어 수제작 스포츠카 스피라
10여 년의 세월을 딛고 보란듯이 출시 성공
뜻이 전혀 맞지 않는 경영진의 안일함이 만들어낸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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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 땅에 백야드빌더와 개인 튜너가 자동차를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수제작 자동차의 문화를 뿌리내리기에 벅차다 보니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를 총집합하여 정리를 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개체 수가 적었다.

여러분들은 국내에 수제작 자동차가 존재했음을 알고 계시는지 여쭙는다. 그렇다면…. 총 3가지의 자동차로 추려질 수 있다. 쌍용차의 칼리스타, 기아차의 엘란, 그리고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로 좁혀진다. 그중 오늘 이 시간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수제작 자동차 스피라에 대해 알아보고자 글을 써 내려간다.

권영범 에디터

원래는 컨셉카
용역을 담당했던 회사
프로토 모터스
프로토 모터스는 지금의 노블클라세의 오너인 김한철-최지선 부부로부터 모태가 되었고, 쌍용차와 아시아 자동차 디자이너의 경력을 가진 이들은 1994년에 그들만의 회사를 차리게 된다. 본래 프로토 디자인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먼저 차렸고, 이후에 자회사로서 설립된 프로토 모터스가 생겨났다.

컨셉카 용역을 담당해 제작하거나 국내 생산 차량의 디자인 리파인을 하청 받아 차량을 손보던 규모가 작은 회사였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1991년부터 자동차 악세서리 업체인 오토클럽을 운영해 나름대로 사업에 수완이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1997년에 들이닥친 IMF 때의 여파로 초창기에 만들어진 프로토 디자인은 도산하였고, 프로토 모터스만 살아남아 용역일 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후 2001년에는 용역 업체로서 쌓은 경력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수제 스포츠카 프로젝트 PS-ll를 제작하고 발표하게 된다. 개발과정을 거친 후 생산할 것임을 공론화하였고, 그 다음 해인 2002년 양산형 모델인 스피라가 최초로 공개되었다.

지속적으로
미뤄지는 출시
2002년 양산형 모델이 출시되자 자동차 매니아는 물론이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출시가 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분위기와 각종 여론은 “드디어 대한민국에서도 제대로 된 스포츠카가 나온다!”라는 기쁨의 환희가 넘쳐흘렀다. 포드의 V8 모듈라 엔진, 포르쉐의 6단 수동변속기의 조합은 최고출력 300마력대를 상회했다.

오늘날에는 패밀리카로 쓰이는 차들도 300마력은 우습게 넘기는 시대지만, 21세기 초반에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강력한 출력이었다. 그러나 기쁨과 기대는 해를 거듭할수록 소식이 묘연해졌다. ‘자동차 관련 법규’라는 프로토 모터스의 입장은 2009년까지 지속되어왔고, 7년이란 시간은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만 갔다.

개발은 거의 마무리 지은 상태였지만 정식으로 국내 판매를 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했던 프로토 모터스는, 차량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넘게 개발하여 쏟아부은 개발비와 맞먹는 수준의 금액이 들어가는 충돌 테스트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투자단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사 어디 쉬운 게 있었던가? 지분의 문제로 법정싸움까지 일어난 프로토 모터스는, 결국 국내 출시를 한차례 미루고 말았고 어렵사리 해외 수출을 먼저 하면서 스피라의 개발을 이어나갔다.

어울림정보통신 박동혁 대표 / 사진 = 어울림 모터스 카이아브

어울림정보통신
박동혁 대표 등장
그러나 거듭되는 자금난은 개발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한계에 도달한 김한철-최지선 부부는 꾸준히 투자처를 찾던 와중에, 뜻이 맞아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이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정보통신기업인 어울림정보기술이었다.

마침 어울림정보기술의 박동혁 대표는 자동차 사업에도 관심이 지대했으며, 스피라의 존재를 알게 되자 프로토 모터스의 직원을 통해 김한철 사장과 만나 입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2007년 어울림정보기술에 인수된 프로토 모터스는 사명을 어울림 모터스로 변경하게 되었고, 조립기계를 사용하는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공장 생산식의 기업만이 존재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국내 최초의 수제작 방식의 퓨어 스포츠카 전문 기업을 표방하며, 해외의 유수 스포츠카 제작 업체와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회사를 목표로 노력 중이던 기업이었음은 확실했다.

2010년 3월 30일
본격 판매 시작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제 어울림 모터스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으며, 그토록 고대하던 충돌 테스트도 통과하게 되었다. 이때가 2010년 3월이었다. 이후 동년 3월 29일에 런칭쇼가 열렸고 3월 30일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하게 되었다.

당시 공식적으로 나온 트림은 스피라 N, 스피라 S, 스피라 EX로 각 트림별로 현대의 2.7L 델타 엔진을 사용해 셋팅을 다르게 하여 튠업 하였고, 가격은 7,900만 원, 8,900만 원, 1억 원 초반대로 책정되었다.

그리고 국내 자동차 기업 중 최초로 300km/h를 오버하는 차량이 나와 한 번 더 뜨거운 관심을 받는데 성공한다.

꽤나 고가의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꾸준하게 들어와 2010년 데뷔 당시 판매 실적은 15대였다. 고가의 수제작 자동차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좋은 실적이었고 이미 주문을 받아 생산 중인 차량이 40대나 밀려있다는 호재가 연속되었다. 2011년 8월에는 높은 가격대로 진입장벽이 높았던걸 해소시킨 4,000만 원대의 스피라 아이코닉이 77대 한정판으로 출시하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진행했었다.

2010년 당시만 해도
델타는 구식이었다
현대의 델타 엔진이 처음 데뷔한 건 2001년 투스카니에서부터 시작된다. 2010년에 출시될 당시에는 이미 람다 엔진이 길거리에 흔하게 보이던 시절이었으며, 스피라가 처음 선보였을 때 일각에선 “너무 구닥다리 엔진을 쓰는 거 아닌가?”라는 비판적인 뉴스 보도도 상당수 발견되었다. 심지어 경차에도 달려 나오는 VDC 마저 스피라에 장착이 되어있질 않았고, 에어백도 구경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 개발 배경을 감안해야 하는 부분임을 인지해야 한다.

스피라가 한참 개발 중이던 당시에는 국산 엔진 중 가장 최고봉이 델타 엔진이었다는 점, 개인이 운영하는 기업이다 보니 레퍼런스를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개발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프로토 모터스에서는 본인들 나름대로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 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피라라는 것이다.

KT렌탈 돌려 막기 렌탈
그리고 주가조작 의혹
본격적으로 어울림 모터스가 망하는 징조가 보이던 해인 2012년 5월, 분식회계, 횡령 및 배임으로 인해 주식 거래 정지가 이뤄졌고,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등록되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T렌탈과 함께 2010년 9월 대당 1억 원이 넘는 차량을 15대씩이나 납품을 받는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어울림 모터스는 차량을 5대만 납품한 뒤 이를 관계회사가 리스로 빌리고, 또 이 차량을 다시 KT렌탈에 납품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차대번호를 조작함과 동시에 색상을 바꿔 다른 차량인 것처럼 둔갑해 말 그래도 같은 차로 돌려 막았던 것이다. 2012년 10월에는 어울림 모터스의 상장폐지가 눈앞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공장이 멈췄단 소문이 돌았으나 이때만 하더라도 어울림 측은 “사실무근의 루머”라며 선을 그었다.

이와 동시에 동년 11월에 출시 예정인 신모델을 통해 모든 논란과 루머를 불식시키겠다며 10월에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11월 초 상장폐지 처분을 받으며 설득력을 잃게 되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사하는 악재를 맞이했다.

여러 의미로 말도 안 되는 차다. / 사진 = 카이즈유

그 어려운 와중에
2013년 뱅가리 탄생
어울림네트웍스, 어울림정보, 어울림엘시스 등 숱하게 많은 계열사가 앞전의 타격으로 인해 줄줄이 상장폐지를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울림 모터스는 2013년에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게 되는데, 그 모델이 바로 스피라를 기반으로 한 4도어 세단 뱅가리다.

처음 봤을 당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뱅가리를 출시할 때 이미 어울림 모터스는 사정이 어렵다고 소문이 나버린 상황이었는데, 삼성동 코엑스를 대관하여 엄청나게 큰 출시 행사를 열었다. 이 말이 뭐냐? 돈을 많이 쓴 티가 엄청났다는 뜻이다.

고성능 장의차 뱅가리

그러나 당시에 초청되어 참여했던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의문을 제시하게 된다. “팔지도 못할 차 왜 만들었고 왜 행사를 열었으며, 얘네가 얻어 가는 게 뭐지?”라는 의문인 것이다.

결국 정확한 해답은 당시 어울림 모터스에서 밝히지 않아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그들이 원하는 건 ‘관심’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스피라 2 디자인 스케치 / 사진 = Facebook ‘Spirra TV’

폐업했는데
스피라 2를 디자인 했다네?
뱅가리를 공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울림 모터스는 서류상으로 폐업도 장이 찍히면서 역사가 끝났다. 그리고 난 뒤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어울림 모터스 홈페이지에 ‘스피라 2’의 디자인이 공개되었다.

당시 네티즌들의 반응은 “얘네 안 죽었어?”, “사기꾼이 만들어낸 차^^”,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등의 반응을 내세웠지만 일부 자동차 매니아들은 스피라의 컴백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스피라 2의 디자인을 공개하면서 박동혁 대표는 “대한민국의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어울림의 꿈은 절대 멈추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겁니다”라며 다시 한번 부활을 꿈꾸는듯하였다. 심지어 스피라 2의 광고 모델을 선발한다며 ‘스피라 TV’라는 별도의 홈페이지를 운영하여 SML Show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인이 만들어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고 최종 선발된 모델은 상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함과 동시에 모델로 발탁될 것이란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기까지 했으며, 실제로 방송이 한두 차례 되긴 하였지만 이후로 행적이 완전히 끊겨버리고 만다.

김한철-최지선 부부가 꿈꿔온 사업은 비록 허무하고 비참하게 끝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 부부는 스피라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동혁 대표와 뜻이 맞질 않아 진작에 퇴사하였고, 과거의 경력을 되살려 ‘클라세오토’를 창립하여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하지만 박동혁 대표는 한솔그룹과 얽힌 저작권 문제로 근 10년 동안 법정싸움을 하였고, 2020년에 들어서 마무리가 지어졌단 소식이 전부다. 아, 스피라의 전기차 모델 스피라 EV를 개발했단 소리가 옛날에 잠시 떠돌았으나 그마저도 지지부진하여 금방 잊혀졌다.

스피라, 시작과 취지는 정말이지 칭찬받아 마땅할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끝은 의도와 취에 걸맞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 오히려 자동차와 관련 없는 사업에도 이용되기까지 한 기구한 역사를 가졌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스피라. 결국 일그러진 그림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연혁에 큰 획을 그렸고 잠시일지라도 가능성을 맛보게 해준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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