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이 대박 났다는 가정하에
페라리를 구매한다면
월 유지비는 얼마일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을 하곤 한다. 본의 아니게 퍼포먼스가 잘 나와 칼퇴를 한다든지, 꿈꾸던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든지, 돈만 있으면 나를 깔보던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다든지 등등 사람의 사고는 다양하고 저마다 제각각의 행복의 나라를 꿈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던 나에게 한줄기 빛이 내렸다. 그건 몇 년 전에 사두고 새까맣게 잊고 있던 코인이었다. 그 코인은 상상 이상으로 상승세를 타고 올라가 당장 회사를 때려치워도 될만한 수치였다. 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난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켜고 곧장 전자결재 문서로 들어가 사직서를 작성할까 했지만 그건 그만뒀다.

 권영범 에디터

아 그래
차부터 사보자
사직서를 쓰다 지웠다 하는 걸 팀장에게 들켰다. 그리곤 나를 끌고 나가선 “갑자기 뭔 난리야?”부터 시작해 “갈 곳은 찾았니?”, “형이 임마 동생 같아서 그래 임마”를 난무하기 시작한다. “그러게 진작에 좀 잘해주지 그랬어”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인 후 그냥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이 그냥 재미 삼아 적어봤어요 ㅎㅎ 제가 어딜 가요~”로 일관했다.

붙잡는 둥 마는 둥 하는 팀장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당장 내가 꿈에 그리던 녀석을 찾아본다. 이유는 신차로 뽑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신차로 나오질 않는다.

뭔가 으리으리 한게 많다. /사진 = SK엔카

그렇게 중고차 사이트를 열고 페라리 488 스파이더를 검색한다. 역시나 페라리는 페라리다. 최소 시작가가 3억 4천만 원을 호가한다. 그렇지만 난 이제 때부자다. 그렇기에 난 금액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중 흰색의 아리따운 스파이더 한 대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주행거리도 가격도 딱 알맞은 거 같다.

운명을 믿는가? 지금 이 순간은 운명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녀석, 정말 가지고 싶다. 곧장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딜러에게 전화를 걸었고 반차 쓰고 갈 테니 딱 기다리라고 엄포를 놓았다.

매매가격 3억 4천 800만 원 / 사진 = SK엔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완벽하다
딜러와 약속한 장소로 가니 하얗고 늘씬한 488 스파이더가 나에게 “안녕, 자기?”라고 말을 건낸다. 흐뭇한 미소로 답례를 하고 차를 찬찬히 둘러보는데, 갑자기 딜러가 “사장님 이거 리스 승계 차인 거 알고 오셨죠?”라고 말한다. 이상하다. 난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핸드폰을 들고서 다시 매물을 보니 옆에 조그마한 글씨로 “리스 승계”가 적혀있다. 하하 내 정신 좀 봐라.

침착하게 웃으며 “그럼 월 얼마 내야 해요? 승인은 나요?”라고 물어보니 딜러는 활짝 웃으며 “월 297만 원이고요 승인은 책임지고 내어 드릴게요 ㅎㅎ”란다. 내 월급과 비슷한 금액대가 월 납입료라는 말이 조금 충격적이긴 했으나 상관없다. 나는 코인 부자니 말이다.

완전 멋지게 “계약서 작성하시지요”를 넌지시 말했다. 아 내가 봐도 너무 멋진 거 같다.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리스 승계 계약서를 작성하고 인수금을 지불했다. 뭔 놈에 인수금만 2억 원이 넘는지 뭔가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곤 1억 7천만 원가량의 잔금을 58개월간 납입하면 된단다. 상관없다. 나는 불굴의 코인 사나이니까. 자, 계약서는 완성되었고 이제 보험만 들면 되는데 왠지 내 꿈의 차는 내가 직접 보험을 들고 싶다. 그래서 딜러에게 “보험은 다이렉트로….”라고 말한 뒤 앱을 켜기 시작했다.

차 번호 적고 인적 사항을 적어내리고 산정 결과를 보니 “1,871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대물 5억, 대인 무한, 자차가 모두 들어간 가장 기본형 조건이었다. 눈을 잠깐 비비적거리고 보니 맞는 숫자였다. 젊음은 돈으로 못 산다더니 보험료는 아닌 거 같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주말에나 타는 녀석으로 둘거니 말이다. 아무리 부자가 되었어도 마일리지 환급을 놓치지 않는 ‘멋짐’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이 차는
제 찹니다
말을 뒤로한 채 아디오스를 외치고 차를 끌고 나왔다. 차가 너무 낮아서 적응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엔 무척이나 날이 좋다. 이건 신이 나에게 주신 세레나데인 게 분명하다. 청명한 늦가을 공기를 만끽하며 달리는 도중 연료 경고등이 들어왔다. 맥이 빠지지만 나의 달링인 488 스파이더가 배고프다는데 뭔들 못해줄까?

곧장 주유소로 들어간다. 488 스파이더는 연료탱크의 용량이 78L다. 미녀는 많이 먹는다더니 이 녀석도 먹성 좋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가득이요!”를 외치고 기름값을 바라봤다. 요즘 유류세 인하가 되어 고급유가 1850원대로 내려갔다. 가득 넣으니 대략 70L 정도 들어갔고 기름값은 129,500원이 나왔다. 생각보다 별로 안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 녀석의 공인 연비는 ‘7.5km/l’다. 즉 달릴 때마다 머플러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후두둑 떨어진다 보면 된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이미 이녀셕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다짐했으니 말이다. 아! 나란 사람은 뼛속까지 서민이었나 보다. 갑자기 연간 얼마가 들어갈지 저절로 계산하게 된다.

연간 보험료 1,871만 원, 3,500cc 초과한 차량이다 보니 연간 세금은 3년 차 기준으로 864,500원, 연간 유류비는 주말마다 129,500을 주말마다 4주간 넣는다면….. 518,000원 이걸 1년 치로 보면 620만 원이다. 단순하게 차량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연간 유지비는 약 2,577만 원이 나온다. 그냥 기본적으로 갖추고 타기만 해도 쏘나타 한 대 값이 나가게 된다.

모든 게
끝난 그 후
그렇게 한참 동안 달렸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어…. 이건 마치 죽어서 천국에 가는 종소리와도 같은 그런 소리였다. “아, 혹시 나 죽는 건가?” 싶어서 두 눈을 비벼보고 뺨도 때려보는데 아프지가 않다. 우린 참 바보 같다. 꿈인 걸 알면서도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서로 모른척한다.

갑자기 두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차디찬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서러워서가 아닌 이 녀석과 함께 오랫동안 못한 시간을 애도하는 서러움의 눈물이다. 어쩐지 귀에서 엔진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 안 난다 했다. 왜냐면 난 이 차의 엔진 소릴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이 차의 숨소릴 들을 수 없던 것이었다.

점차 천국으로 가는 종소리가 가까워진다. 일어나면 당장 알람 소리부터 바꿔야겠다. 아무튼, 나도 모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함께 못해서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를 마지막으로 눈이 떠졌다. 베개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흥건하게 적셔져 있다.

진한 애틋함과 여운이 남는 꿈이었다. 그리곤 핸드폰을 들어서 코인을 확인해 봤다. 지난주에 바닥을 기어 다니더니 지금은 사라졌다. 그리곤 머릿속은 “출근해야지”가 맴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오늘도 열심히 월급을 채굴할 준비를 한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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