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의 전설적인 명차 F40
엔초 페라리의 유작, 페라리 40주년 기작
슈퍼카 전쟁에도 참여했었다
페라리에는 많은 명차를 많이 남긴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하나하나가 그냥 명차라고 봐도 무방하며, 일반적인 양산차뿐만 아니라 페라리가 주력하고 있는 F1 카나 그 외 르망 24시 등 수많은 경기에 출전한 레이싱카 등의 정보들을 모두 수록하면 책으로 낼 수 있을 정도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 많은 명차 중 가장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양산차를 하나 소개해 보겠다. 바로 F40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의미가 깊은 명차로 크게 인정받고 있다. 그런 F40이 최근 국내에서도 포착되었다. 정말 한국에는 없는 차가 없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F40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글 이진웅 에디터
그룹 B 랠리 폐지로
빛을 못 본 288 GTO
대신 슈퍼카 전쟁의 시작을 끊었다
1980년대에는 많은 브랜드들이 속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흔히 슈퍼카 전쟁이라고 한다. 슈퍼카 전쟁이 시작된 원인은 그룹 B 랠리 폐지였다. 그룹 B 랠리는 시중에 판매되는 2도어 스포츠 카들이 경쟁하는 클래스로, 양산차 기반 레이싱카 중에서는 가장 빠른 카테고리였다.
그룹 B의 특징은 비포장도로를 스포츠카 기반 레이싱카가 평균속도 200km/h를 넘는 속도로 주행했다. 서킷에서도 컨트롤하기 힘든 것을 비포장도로에서 하니 레이서들은 물론 주최자와 관중까지 그야말로 모두가 열광했었던 경기였다.
하지만 1986년, 포르투갈 랠리 3전 도중 컨트롤을 상실한 포드 RS200이 관중을 덮쳐 3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프랑스 5전, 독감에 걸려 정신이 없던 드라이버 헨리 토이보넨이 랠리를 강행하다가 코스를 이탈하여 절벽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두건의 사고로 인해 198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룹 B는 퇴출되었다.
당시 페라리는 그룹 B에 참가하기 위해 288 GTO를 개발한 상태였고, 자격을 얻기 위해 272대를 양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 B가 폐지되면서 288 GTO는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288 GTO는 다른 곳에서 빛을 봤는데, 양산차 최초로 300km/h를 돌파하며 한정판 플래그십 슈퍼카의 시작을 끊었다. 즉 현행 플래그십 모델인 라페라리의 조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슈퍼카 전쟁의 스타트를 끊었다.
포르쉐 959가 기록을 깨자
자존심 상해서 만든 차가 F40
한편 포르쉐 역시 그룹 B 출전을 위해 포르쉐 959를 개발했는데, 개발을 완료하고 보니 그룹 B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288 GTO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빛을 발했는데, 바로 최고 속도 315km/h을 내 288 GTO가 가지고 있던 최고 속도 기록을 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엔초 페라리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마침 288 GTO를 기반으로 성능을 향상시킨 그룹 B 전용 레이스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룹 B가 폐지되어 갈 길을 잃은 상황까지 맞아떨어져, 해당 계획을 변경해 공도 주행에 특화된 F40으로 탄생시켰다.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
공기역학에 최적화되었다
F40의 디자인은 피닌파리나에서 맡았다. 사실 페라리 일부 모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되었다. 차를 살펴보면 직선 위주의 디자인으로 공기저항을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공기역학에 아주 최적화되었다고 한다.
설계할 때부터 구동계보다도 공기역학에 더 신경 썼으며, 빠른 것도 중요했지만 안전성에 더 큰 중점을 두었다. 실제로 안정성이 불안하면 주행 도중 갑자기 앞이 들리며 차가 공중으로 솟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역학에 최적화한 설계 덕분에 공기저항 계수는 당시 기준으로 낮은 편에 속했던 0.34 Cd에 프런트 스포일러와 차체 일체형 윙으로 안정성을 더했다.
빠른 속도를 위해 무게 감량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케블라와 탄소섬유, 알루미늄을 사용해 무게를 줄이면서 강성을 확보했고, 윈도우는 플라스틱 소재로 적용하고 파워윈도우 기능도 뺐다. 또한 글로브박스, 가죽, 카펫, 도어 장식, 카오디오 등을 과감히 삭제했다.
심지어 도어 핸들도 노끈이었으며, 시트도 레이싱카에 사용하는 버킷 시트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래도 에어컨은 남겨놨다. 그 결과 공차중량은 불과 1,100kg에 불과하다. 경쟁 모델이었던 포르쉐 959가 편의 장비를 많이 적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평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리는 편이다.
V12 엔진이 아닌
V8 엔진을 사용했다
파워트레인의 경우 2.9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이 적용되었다. 특이하게 V8 엔진이 적용되고도 배기량이 낮은 편에 속한다. 사실 V12 엔진을 사용해도 문제는 없었지만 엔초 페라리는 V12 엔진에 대한 집착은 하나도 없었고, 차량 밸런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해당 엔진은 디노 206GT에 사용된 것을 개량한 최종판이라고 한다. 참고로 디노는 엔초 페라리의 큰아들의 별명이며, 큰아들은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의 혼과 생전의 꿈을 엔진과 차에 담기 위해 엔초 페라리가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만 아쉽게도 엔초 페라리는 F40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엔진 출력은 478마력, 최대토크는 58.8kg.m을 발휘했으며, 6단 수동변속기가 맞물렸다. 제로백은 4.1초였으며, 최고 속도는 324km/h을 기록해 포르쉐 959의 기록을 다시 갱신했다.
공기역학과 안정성에 최적화된 설계, 첨단 소재를 활용해 경량화와 더불어 차체 강성까지 모두 잡은 점, 엔초 페라리가 큰아들의 혼을 담아 계량한 V8 엔진이 잘 어우러져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최고 속도의 영광은 3년가량 누렸으며, 이후 출시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가 최고 속도를 다시 갱신했다.
F40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F40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차다. 차를 잘 만든 것 외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작품이자 페라리 창업 4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 엔초 페라리가 큰아들의 혼을 담아 만든 만큼 가장 애착이 높았다고 할 수 있는 양산차, 포르쉐 959를 꺾고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했다.
여러 의미가 담겨 가치가 높게 책정되었다. 신차가격이 약 40만 달러 정도였는데, 2020년 기준으로 올라온 매물의 가격은 70만 달러다. 그동안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해도 신차가격보다 중고 가격이 높게 책정되었다. 특히 50대만 생산된 초기형의 경우 가격이 더 높다.
일본에서
F40을 많이 구매했다
F40은 유독 일본에서 많이 팔렸다. 출시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가 최고조에 이를 시기였기 때문에 F40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일본인들이 많았다. 당시 일본에서 F40을 사려면 4,500만 엔을 내고도 2~3년을 기다려야 했고, 병행수입으로 들어온 차를 사려면 2억 5천만 엔을 지불해야 했다. 참고로 현재 기준이 아닌 1987년 F40 출시 당시 기준이다. 2억 5천만 엔은 지금 기준으로 한화로 계산해도 26억 원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F40의 별명은 달리는 부동산이다. 그런 탓에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창작물을 보면 F40이 등장하는 빈도가 꽤 잦다.
F40을 시작으로
10년마다 한정판 모델을 출시
트랙 전용 모델도 내놓았다
F40을 시작으로 페라리는 10년마다 한정판 모델을 출시했다. 50주년을 기념해서 F50, 60주년을 기념한 모델 엔초 페라리(F60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엔초 페라리의 후속으로 라페라리를 내놓았다가 이후, 70주년 기념 모델로 오픈카 모델인 라페라리 아페르타를 출시했다.
또한 해당 모델을 기반으로 한 트랙 전용 모델도 내놓았다. F50은 F50 GT, 엔초 페라리는 FXX, 라페라리는 FXX-K를 각각 내놓았다. 트랙 전용 모델이기 때문에 공도에서 운행은 불가능하다.
국내에는
2대 정도가 있다고 한다
없는 차가 없다는 한국, F40 역시 국내에 존재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2대 정도가 등록되어 있으며, 검은색 1대, 빨간색 1대라고 한다.
특히 검은색은 슈퍼카 취미로 유명한 연예인 연정훈이 소유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추가로 국내에 들어온 것이 없다면 위 사진에 나온 검은색 차량이 연정훈이 소유했던 F40이 맞다. 현재는 페라리 중 488 GTB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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