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얘네 때문이라고?” 한국에서 흥망성쇠 전부 겪은 제조사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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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서 자동차까지
승합차로는 최고를 달린 기아
과잉투자와 증설로 인한 손해


1997년 한국에는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었다. 그 위기는 ‘IMF 외환위기’로 불렸던 시기로 당시 한국은 국가적인 부도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인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기아라는 이야기가 있다.

기아는 현재 현대차그룹 아래서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고, 심지어 현대차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기아는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어떻게 현대차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유재희 기자


자전거에서 시작된
기아의 역사

기아는 시작부터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가 아니다. 기아는 ‘경성정공’이라는 이름에서 시작된 자전거 부품회사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당시 만들어진 것이 국산 자전거 회사 ‘삼천리 자전거’다. 이후 제조업에 노하우를 쌓아, 1961년 혼다와 합작으로 오토바이를 처음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기아마스타’라는 자동차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아는 점차 자동차 생산에 열을 올리기 위해 본격적인 생산 라인까지 갖추게 되는데, 1973년에 세워진 공장이 바로 지금의 기아 생산 공장인 소하리 공장이다. 기아는 소하리 공장에서 첫 승용차 브리사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기아에게는 포니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두 개의 바퀴에서
네 개의 바퀴로

기아는 브리사를 시작으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고, 정부 역시 국내 자동차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정부는 국가 재건 방안 정책의 일환으로 피아트, 생카 등 여러 기업과 협정을 맺고, 국내 자동차 공업을 육성한다 계획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성장하고 있었다.

그 결과 기아는 마쓰다와 기술 협약으로 브리사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군용 차량과 같은 특수 차량들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아는 B 버스, P 버스 그리고 타이탄 등 당시 화물차로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꽉 잡고 있었고,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위기를
맞은 기아의 상황

꽃길만 걷던 기아는 1981년 정부에 의해 경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공업 통합 조치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기아는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되어 잘 팔리던 브리사를 생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석유 파동이 있던 당시에는 기아가 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기아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화물차와 승합차를 이미 생산하고 있던 기아는 마쓰다의 소형승합차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서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기아가 생산한 차량이 바로 봉고다. 화물트럭의 형태에 뒷부분을 전부 의자가 있는 실내로 만들어 내놓았고, 당시 여가를 단체로 즐기던 소비자들에게 알맞은 차량이었다. 이때부터 ‘승합차=봉고차’라고 불리고 있었고, 80년대 중반까지 기아는 봉고차의 판매로 흑자 상태로 돌아서게 되었다.


더 큰 위기는
1997년에 발생

1987년 승용차 생산 제한이 풀림과 동시에 기아는 프라이드, 콩코드 등 역사에 길이 남은 승용차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사업과 더불어 건설, 금융 등 다양한 사업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아는 금융과 건설 등에 보증을 서고 있던 상황에 기아의 자동차 분야는 삼성, 현대와 같은 업체들로 인해 판매량이 부진하고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에서는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던 중 큰 위기를 맞이한다.

1997년 기아도 ‘IMF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고, 기아는 어음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부 역시 기아를 공기업화에 실패하면서, 공개 매각에 기아를 올리게 되었다. 여기서 ‘IMF 외환위기’ 상황에 숨을 돌린 대기업들은 기아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결국 기아를 가져간 곳은 현대차였다.


현대차에 들어간
기아의 근황

1998년 기아는 현대차그룹에 매각되었고, 기아가 가지고 있던 ‘기아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자동차판매’ 등을 통합한 뒤 2000년 2월 회사정리절차라 마무리되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던 기아는 현대차그룹 아래 꾸준한 성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기아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차별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앞에는 현 현대차그룹 회장인 정의선이 있었다.

이때 당시부터 기아는 K5, 로체, 쏘울 등 ‘디자인 기아’를 완성하기 시작했고,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현대차 다음으로 큰 자동차 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기아는 제네시스를 제외한 현대차의 판매량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고, 심지어 부동의 자동차 판매량 1위인 세단을 깨고 기아의 SUV가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기아는 다사다난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대차그룹에 속하게 되었지만, 사실상 기아는 독자적인 성장보단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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