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으면 페라리 씹어먹었죠..” 국산차 역사를 송두리째 바꿨을 수도 있었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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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위주의 자동차 시장
만약 역사가 달랐더라면?
출시 무산된 국산차 모음

삼성 SSC-1 / 사진 출처 = “Road & Track”

요즘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 종류는 SUV다. 2010년대 초반 국내에 불어닥친 소형 SUV 열풍을 시작으로 중형, 준대형 SUV의 판매량도 덩달아 늘었고 과거 세단 비중이 컸던 패밀리카는 SUV나 미니밴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과거에는 국산차 시장만 놓고 봐도 상당히 다양한 차종이 포진해있었다. 현대 액센트, 기아 프라이드 등의 소형차 시장도 존재했으며 80년대 쌍용차는 칼리스타, 90년대 기아는 엘란 등 컨버터블을 팔기도 했다.

수입차도 잘 안 팔리던 시기에 컨버터블이라니 현시점에서 보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시도인데,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못한 모델까지 보면 더욱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삼성이 계속 자동차를 생산하고 대우자동차도 GM에 인수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차들이 도로를 다니고 있었을까? 출시될 뻔했으나 아쉽게 무산된 국산차들을 살펴보자.

글 이정현 기자

삼성 SVC_1
삼성 SEV-4

1990년대 삼성자동차
전기차를 준비했었다

삼성자동차는 1990년대 초반 전기차 출시를 노리고 있었다. ‘SEV’는 삼성자동차가 설립되기 전 삼성중공업이 개발을 주도한 전기차 프로젝트다. 1992년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듬해인 1993년 대전 엑스포를 통해 첫 프로토타입 SVC를 공개했는데, 완충 시 85km를 달릴 수 있었다. SVC는 신라호텔, 삼성전자,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에서 VIP 이송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공개된 SEV-3, SEV-4는 공도 주행까지 상정해 개발되었다. 당시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SEV에는 납축전지가 탑재되어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180km에 달했으며, 최고속도 130km/h로 달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 니켈 메탈 수소 전지, 니켈 아연 전지 등의 배터리팩으로 주행가능거리 400km를 넘는 모델도 연구 중이었던 걸로 전해진다. 이 정도 스펙이라면 현행 전기차와도 견줄 수 있지만 당시 전기차를 운행할 제반 환경이 열악해 결국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삼성 SSC-1 / 사진 출처 = “Road & Track”
삼성 SSC-1 / 사진 출처 = “Road & Track”

미드십 후륜구동 스포츠카
삼성의 첫 차가 될 뻔했다

삼성자동차의 첫 양산차는 SM5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SM5보다 1년 앞서 리어 미드십 후륜구동 레이아웃의 스포츠카가 출시될 수도 있었다. 1997년 공개된 SSC-1은 SM525V에 탑재되었던 2.5L V6 ‘VQ25DE’ 엔진을 올려 최고출력 190마력, 최고속도 230km/h를 발휘했다. 닛산제 엔진부터 300ZX의 섀시, 세피로의 실내 일부 편의사양을 가져왔으며 테일램프도 토요타 수프라 부품을 그대로 적용하는 등 원천기술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했다. 하지만 SSC-1이 삼성차의 고유 모델이라는 데에는 반박이 없다.

삼성차는 SSC-1을 양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콘셉트카나 연구용 프로토타입의 경우 전혀 할 필요가 없었던 연비 인증(10.1km/L)을 받기도 했으며, 모터쇼 등 자동차 행사나 전문 매체를 통해 차량을 지속해서 노출시켰다. SSC-1이 끝내 양산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업계는 IMF 경제 위기와 삼성차의 몰락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 쉬라츠 최종 프로토타입 / 사진 출처 =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
대우 쉬라츠 / 사진 출처 =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

국산 최초의 V8 세단
대우차가 되었을 수도

국산차 가운데 최초로 V8 엔진을 얹은 모델은 현대차 에쿠스다. 미쓰비시에서 가져온 4.5L V8 오메가 엔진은 기존 국산차 최대 배기량을 자랑했던 엔터프라이즈의 3.6L를 한참 넘어서는 수준이었기에 각종 매체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1997년 대우자동차는 현대차보다 먼저 V8 엔진을 탑재한 세단 ‘쉬라츠’를 준비하고 있었다. 엔진뿐만 아니라 차체 크기까지 국산 최대를 노리고 개발했지만 당시 IMF와 함께 대우그룹이 송두리째 몰락하며 사진만 남게 되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쉬라츠에는 2.5L 직렬 6기통 엔진과 4.0L V8 엔진까지 두 가지 파워트레인이 탑재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내비게이션, LCD 계기판부터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과 지능형 브레이크, 측면 에어백까지 당시 최첨단이었던 편의 사양도 준비 중이었다. 업계는 당시 대우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대형 세단 ‘체어맨’을 갖게 되었기에 굳이 쉬라츠를 출시할 필요가 없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로위 750 / 사진 출처 = “Wikipedia”
로위 350 / 사진 출처 = “Wikipedia”

상하이차의 쌍용차 먹튀
결국 중국차가 된 세단들

체어맨은 쌍용차 역사의 유일무이한 세단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쌍용차는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인수되었을 당시 모노코크 섀시 타입 준중형 SUV C200과 중형 세단 U100, 준중형 세단 B100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C200은 코란도 C로 양산되어 현대 투싼, 기아 스포티지 등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B100과 U100은 결국 세상 빛을 볼 수 없었다. 그 유명한 상하이차 먹튀 사태 피해의 일부였던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들은 쌍용차가 독자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상하이차는 ‘기술 이전’이라는 명목으로 프로젝트를 통째로 뺏어오다시피 했다. 그 결과 B100은 상하이차 산하 브랜드 로위의 350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생산되었으며 U100에 녹아든 쌍용차의 노하우는 로위 중형 세단 750에 적용되었다. 당시 상하이차는 두 세단을 국내에서도 생산하기로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2009년,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갖다 버리다시피 매각했다.

현대 PO 스파이샷 / 사진 출처 = “MotorAuthority”

현대 트라제 후속 MPV
금융위기로 무산되다

현대차는 한창 중형 MPV 트라제 XG를 판매하던 당시 후속 모델로 크로스오버 MPV ‘PO’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2005년 공개된 콘셉트카 포르티코 키반의 디자인과 모델명이 적용될 예정이었으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 토요타 벤자, 시트로엥 C4 피카소 등 해외의 7인승 MPV들을 경쟁 상대로 지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현대차가 2010년 이전까지 PO를 출시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2008~2009년 북미에서 프로토타입 차량이 여러 번 포착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스파이샷을 살펴보면 YF 쏘나타에 먼저 적용되었던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쳐‘가 반영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출시 직전 금융위기가 닥쳤고 현대차는 PO 프로젝트를 폐지, 미니밴 라인업을 그랜드 스타렉스에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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