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중형급 최강자 아반떼
시장 개척자이기도 해
지난날의 활약 돌아보니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자동차 시장은 포니, 엑셀 등 저렴한 소형차가 주류였지만 곧 경제 호황기에 접어들며 평균 소득이 크게 올라갔다. 소비자들은 실내 공간이 더욱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중형차도 함께 고려하기 시작했으나 당시 중형차는 현재의 준대형차와 같이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스텔라, 캐피탈 등 1세대 준중형차는 차체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약한 엔진을 얹어 주행 성능이 답답했으며 잔고장도 많았다.
1990년대 초까지도 중형차의 높은 가격 부담은 여전했는데 이때 현대차는 엘란트라, 기아차는 세피아 등 2세대 준중형차를 선보이며 소형차를 벗어나고픈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준중형차 시장 형성과 경쟁도 이때부터 본격화되었으며 현대차는 그간 출시됐던 모델과 차원이 다른 신차를 내놓는다. 바로 오늘날까지도 준중형차 일인자 자리를 지키는 아반떼 역사의 시작이다.
글 이정현 기자
진정한 독자 개발 모델
고려청자에서 영감 얻어
일명 ‘구아방’으로도 불리는 J2 아반떼는 기존 준중형 세단 ‘엘란트라’의 후속으로 등장했다. 엘란트라는 미쓰비시로부터 소형차 미라쥬의 플랫폼과 시리우스 엔진, 오리온 엔진 등 파워트레인을 빌려와 개발했지만 아반떼는 달랐다. 현대차 최초로 완전 독자 개발한 엑센트의 개발 노하우를 활용해 플랫폼부터 엔진까지 국산화율 99.88%를 달성했다. 당시에는 정부 차원에서 독자 기술 확보를 장려했던 만큼 그 의미가 더욱 컸다.
그간 각진 디자인이 주류였던 국산차들과 달리 에어로 다이내믹을 강조한 디자인도 크게 주목받았다.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 위주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은 당시 국내 완성차 제조사 중 독보적인 금형 기술을 보유한 현대차만이 양산차에 적용할 수 있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을 생략한 전면부는 오늘날에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탈 준중형급 실내 공간
명기 ‘알파 엔진’ 탑재
인테리어에도 엑센트와 마찬가지로 곡선을 활용한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탑승자를 감싸는 듯한 랩 어라운드(Wrap Around) 스타일은 아늑함을 강조하며 실내 공간은 탈 준중형급이라고 해도 무리 없을 정도로 넓었다. 당시 한 세대 전의 중형 세단과 맞먹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심지어 토션빔 방식의 후륜 서스펜션을 적용한 경쟁 모델들과 달리 멀티링크의 일종인 듀얼링크 방식을 채택해 주행감 역시 독보적이었다고 전해진다.
파워트레인은 현대차 최초로 독자 개발에 성공한 1.5L 가솔린 알파 엔진이 기본이었으며 고급 트림에도 독자 개발 엔진인 1.8L 베타 엔진을 탑재했다. 당시 아반떼 사양 알파 엔진은 DOHC가 기본 적용되어 당시 배기량 대비 우수한 최고출력 107마력을 발휘했다. 알파 엔진은 이후에도 개선을 거듭해 2000년대 초반까지 현대차그룹 소형, 준중형 모델에 두루 적용되었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변속기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역대급 단일 판매량 기록
왜건 ‘투어링’으로 헛발질
아반떼는 1995년 출시 당일 3,700대가량의 계약을 시작으로 5일 만에 1만 대를 돌파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1996년에는 연간 판매량 19만 2,109대를 기록해 당시 라이벌이었던 기아 세피아와 대우 에스페로를 크게 앞선 것은 물론이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국내 준중형 단일 차종 1위 기록에 올랐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나라 전체가 혼돈의 도가니였던 와중에도 준중형 시장 점유율 절반을 집어삼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 밖에도 현대차는 1995년 9월 왜건 모델인 아반떼 투어링을 추가했다. 세단과 동일한 파워트레인이 탑재되었고 나름 널찍한 트렁크도 갖췄지만 세단 디자인에서 뒤만 잡아 늘인 듯한 디자인으로 인해 혹평이 쏟아졌다. 심지어 가격은 세단보다 훨씬 비싸 판매량이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업계는 아반떼 투어링을 놓고 ‘한국 시장을 왜건의 무덤으로 만든 원흉‘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실망스러운 올 뉴 아반떼
기존 모델이 낫다는 평가도
1998년에는 전후면 디자인을 약간 손본 페이스리프트 모델 ‘올 뉴 아반떼’가 출시되었다. 디자인 외에도 쇽 업소버가 가스식으로 바뀌며 승차감이 개선되었으며 범퍼 디자인 변경으로 차체 크기도 더욱 커졌다. 하지만 기존 디자인이 더 낫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생략해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던 전면부에 구멍을 뚫어 어색해졌으며 테일램프 형상도 부자연스럽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새로 추가된 파워트레인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린번(Lean Burn, 희박 연소) 방식의 1.5L 알파 엔진이었는데 더욱 적은 연료에 더욱 많은 공기를 섞어 연소시키는 개념으로 11~12%가량의 연비 향상을 노렸다. 현대차는 린번 엔진 사양에 “1회 주유로 서울~부산 왕복이 가능하다”며 높은 효율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판매량은 저조했다. 기존 대비 출력이 낮아 더욱 높은 RPM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실제 연비는 별 볼 일 없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준중형차 1위
올해 페이스리프트 예정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아반떼는 경쟁 차종 대비 훌륭한 상품성과 가성비를 앞세워 준중형 세단의 대명사로 등극했으며 더 넓은 범위로는 국민차로 거듭났다. 이후 2000년, 현대차는 풀체인지 모델로 아반떼 XD를 선보였고 현재까지 7세대에 걸친 진화를 통해 준중형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첫 등장으로부터 28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아반떼는 수많은 사회 초년생의 첫 차로 선택받고 있다. 쌍용 티볼리, 기아 셀토스 등 소형 SUV 돌풍이 거셌던 2010년대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아 오랜 헤리티지의 격을 입증했으며 현재도 준중형차 시장 일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현행 CN7 아반떼는 올해 상반기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또 한 번의 변화를 거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