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차의 12V 배터리
발명된 지 150년 넘었다
전기차에도 탑재되는 이유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 자체의 힘으로 시동을 걸 수 없어 외부 동력으로 엔진을 회전시키는 ‘크랭킹’ 과정이 필요하다. 자동차 산업 초창기에는 크랭크축에 직접 쇠막대를 꽂아 사람이 직접 크랭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동 모터가 발명되었다. 요즘은 고카트 등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차에 시동 모터가 탑재된다.
그리고 그 모터를 돌리는 전력은 12V 배터리에서 공급된다. 12V 배터리는 시동 외에도 엔진이 계속 켜져 있을 수 있도록 점화 코일에도 전력을 공급하며 헤드램프, 오디오, 히터 등 전장 시스템 작동에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12V 배터리가 전기차에도 필수라고 한다. 2톤 내외의 차체를 수백 킬로미터나 이동시킬 정도로 거대한 배터리가 있음에도 굳이 12V 배터리를 따로 얹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 이정현 기자
발명 초기와 구조 비슷해
요즘은 MF 배터리가 대세
우선 차량용 배터리가 발명된 지는 벌써 한 세기 하고도 50여 년이 흘렀다. 19세기 프랑스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Gaston Plante)’가 이차 전지의 일종인 납축전지를 개발한 게 시초였다. 현재 생산되는 12V 배터리는 별다른 변화 없이 당시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극과 -극으로 구성된 두 개의 전극이 전해질 속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게 배터리의 기본 원리로, 극판과 전해질의 종류에 따라 배터리 종류가 세분화된다. 과거에는 액체 상태인 전해질을 필요에 따라 보충해주는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요즘은 전해질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MF(Maintenance Free) 배터리가 흔히 사용된다.
구동용 배터리의 고전압
전장 시스템과 안 맞아
전기차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내연기관 대신 배터리 전력이 모터를 구동시킨다는 점이다. 충분한 전력을 지닌 전기차에도 굳이 내연기관 차량과 같이 12V 배터리를 얹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소 360V~800V에 달하는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는 구동용으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전장 시스템에 사용하기에는 과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각종 조명과 오디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과 같은 전장 시스템도 내연기관 차와 마찬가지로 12V 혹은 24V(상용차 한정)를 기준으로 한다. 구동용 배터리보다 훨씬 낮은 전압으로도 충분히 작동하는 전장 시스템을 굳이 고전압에 맞춰 전환하기에는 불필요한 비용이 들며 이는 결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완성차 제조사가 아직 12V 기반의 전장 시스템을 사용한다.
초창기 독특한 설계 적용되기도
요즘은 엔진룸, 트렁크에 탑재
다만 구동용 배터리는 전기 모터 외에도 충전 시스템, 공조 계통 등 고전압이 필요한 시스템에 전원을 공급한다.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 초창기에는 12V 배터리 대신 고전압을 12V로 변환하는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구동용 배터리 내부에 설치해 사용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12V 배터리를 수리하거나 교체하기 위해 고전압 배터리를 통째로 분리하는 등 불편이 컸기에 현행 전기차는 트렁크나 프렁크에 12V 배터리가 별도로 탑재된다. 탑재 위치까지 내연기관 차량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막상 12V 배터리를 충전할 발전기가 없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전력을 유지할까?
12V 배터리용 발전기 없어
컨버터가 전압 변환, 충전
전기차에는 발전기 대신 ‘LDC(Low Voltage Dc-DC Converter. 저전압 직류 변환장치)’로 불리는 컨버터가 12V 배터리의 충전을 담당한다. 구동용 배터리가 공급하는 고전압 전원을 12V로 변환해 차량 내 전장 시스템에 전력을 공급하며 12V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도 겸한다.
구동용 배터리는 완속 및 급속 충전 시스템으로 충전되는데 급속 충전기의 경우 직류 전압이 통상 450~500V에 달한다. 완속 충전기로 충전할 땐 전기차에 탑재된 ‘OBC(On-Board Charger. 온보드 충전기)’가 380V 전압의 3상 교류(AC) 전원 및 220V 가정용 전기를 직류 전원으로 바꿔준다.
V2L 기능도 대세
가정용으로 충분
한편 최신 전기차는 구동용 배터리의 전력을 외부로 공급해 각종 전자기기 충전기는 물론이며 가전제품도 사용할 수 있는 V2L(Vehicle to Load) 기능이 탑재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 5, EV6의 경우 실내 V2L 포트로 운행 중에도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며 외부 충전구에 V2L 커넥터를 연결해 최대 3.6kW의 전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구동용 배터리가 100% 충전된 경우 전기밥솥, 전기 그릴, 전기 포트, 노트북, 전자레인지 등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4인 가족이 4일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아이오닉 5, EV6 롱레인지 모델 기준 72kWh에 달하는 구동용 배터리 용량은 서울시 기준 한 가정이 1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