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김도헌’님)

지금은 세컨드카를 갖고 있는 집도 많을 정도로 자동차가 대중화되었지만 1980년대 당시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었다. 현재 동남아시아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탔었고, 소형차인 포니만 타도 최소 중산층이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대표적인 고급차로는 대우 로얄살롱과 현대 그랜저가 있다. 당시 아파트 한 채에 버금갈 만큼 매우 비싼 가격을 자랑했으며,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옵션 사양들이 당시에는 최첨단 사양으로 로얄살롱과 그랜저에만 탑재되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고급차와 당시 적용되었던 최첨단 옵션들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이진웅 기자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이승민’님)

로얄 시리즈를
최고급 브랜드로 만든 모델
1980년대 대우 로얄 시리즈는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고급 브랜드였다. 그중 로얄 살롱은 플래그십 라인업을 담당했으며, 당시 많은 중년들의 드림카였다.

로얄 살롱은 1980년 홀덴 코모도어 초기형 VB 모델의 차체에 2.0 리터 엔진을 탑재해 출시했다. 출력은 119마력, 18.0kg.m으로 지금은 소형차가 발휘하는 출력이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 고마력에 속한 자동차였다. 변속기는 수동 4단과 자동 3단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이승민’님)

원래 6기통 2.8리터 엔진을 탑재해서 출시하려고 했으나 고위층 관용차를 4기통으로 제한한 규정으로 인해 4기통 2.0엔진으로 변경했다.

이전 세대 모델이었던 레코드 로얄에 이어 관용차로 지정되어 대량으로 납품되었다. 그 덕분에 당시 대우차는 부자, 장관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현대차가 도입한 그라나다와 기아차가 도입한 푸조 604를 제치고 고급차 시장을 평정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이승민’님)

새한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로 사명이 변경된 1983년에는 뉴 로얄 살롱을 출시했다. 대시보드가 오펠 레코드 E2 형태로, 리어램프는 홀덴 코모도어 VH 형태로 변경된 것 이외에는 기존과 거의 동일했다.

1987년에는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기존의 로얄 살롱과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대시보드는 로얄살롱에 적용되었던 오펠 세나토르의 대시보드가 적용되었다. 이후 1988년에는 아래에서 설명할 슈퍼 살롱과 매우 비슷한 외관으로 변경되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김도헌’님)

로얄 살롱 슈퍼 출시
그러나 그랜저에 밀렸다
1986년에는 로얄 살롱의 상위 모델로 로얄 살롱 슈퍼를 출시했다. 오펠 세나트로의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원본인 오펠 세나토르는 1978년, 레코드 로얄의 상급 6기통 모델로 도입하려 했으나 앞서 언급한 고위층 관용차 4기통 제한 정책으로 인해 백지화된 적이 있었다. 이후 제한이 풀리고 자동차 수입자유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로얄 살롱 슈퍼의 베이스 모델로 다시 도입했다.

출시 당시 가장 비싼 국산차였으며, 오펠의 전자식 연료 분사 엔진이 적용되었다. 그 덕분에 로얄 살롱보다 어 높은 128마력을 발휘했다. 차체 크기도 전장 4,784mm, 전폭 1,758mm, 전고 1,420mm, 휠베이스 2,668mm로 당시 기준으로 꽤 컸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이현성’님)

국산차 중 가상 성능이 좋았고 디지털 계기판 등 시대를 앞서나간 첨단 사양 적용, 3저 호황이라는 분위기가 맞물려서 한동안은 주문이 밀릴 정도로 잘 팔렸다가 현대 그랜저의 등장으로 수요를 모조리 빼앗겼다.

1987년에는 현대 그랜저에 대항하기 위해 슈퍼 살롱으로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약간의 외형 변화 외에는 로얄 살롱 슈퍼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랜저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했다. 결국 1991년, 브로엄이 출시되면서 로얄 살롱과 함께 단종되었다.

로얄 살롱에 적용되었던
각종 첨단 사양들
로얄 살롱은 당대 최고급 승용차였던 만큼 다양한 고급 사양이 장착되었다. 해당 사양들은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최첨단 사양으로 고급 모델에만 탑재되었다.

로얄 살롱(로얄 살롱 슈퍼 포함)에 적용된 사양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 최초로 이중 안전 접합유리가 장착되었다. 소음을 줄여 정숙한 실내를 구현할 수 있었으며, 사고 등으로 유리가 깨질 때 파편으로 인한 피해를 줄여준다.

실내에서 각도 조절이 가능한 사이드미러가 장착되었으며, 서리와 김서림을 없애기 위해 뒷유리에 열선이 추가되었다. 당시 자동차들은 차 문을 잠그려면 하나하나 개별로 잠가야 했는데 로얄 살롱은 중앙 집중식 도어 잠금장치를 적용해 운전석만 잠가도 모든 문이 잠기게 된다.

그리고 요즘 보편화되고 있는 디지털 계기판이 로얄 살롱에 적용되었다. 물론 지금처럼 풀 LCD가 아닌 아날로그 게이지를 디지털화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리는 파워 윈도와 4-스피커 오디오 시스템, 이중충격 흡수식 파워핸들, 맥퍼슨 스트럿식 서스펜션이 장착되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김민서’님)

로얄 살롱을 제치고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다
로얄 시리즈가 국내 고급차 시장을 장악할 당시 현대자동차는 대우자동차보다 아랫급 취급을 받았었다. 1978년부터 그라나다를 조립 생산하긴 했지만 앞서 설명한 로얄 살롱에 밀렸다.

그러다 1986년, 자동차 수입 자유화를 앞두고 현대차도 이에 대응할 고급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포드 그라나다를 조립 생산한 것 이외에는 고급 승용차 개발 경험이 없었던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협력해 그랜저를 개발, 출시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이현성’님)

그랜저는 로얄 시리즈와는 달리 전륜구동을 채택해 실내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었다. 엔진은 초기 120마력을 발휘하는 2.0리터 4기통 시리우스 엔진을 탑재 후 2.4리터 엔진을 추가해 본격적으로 로얄 살롱과 경쟁했다.

4기통 제한 조치가 풀린 이후에는 164마력을 발휘하는 V6 3.0리터 사이클론 엔진을 탑재했다. 이 모델 출시로 그랜저의 입지가 더욱 높아졌고 경쟁 모델인 슈퍼 살롱은 물론 임페리얼까지 밀어내고 고급차 시장을 장악했다. 즉 1980년대 초중반에는 로얄 살롱이 고급차 시장을 장악했다면 1980년대 중후반에는 그랜저가 장악했다.

(사진 : 남자들의 자동차 ‘하지환’님)

1세대 그랜저는 직선 위주의 각진 디자인 때문에 각 그랜저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전체적인 실루엣 외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 램프, 루프, 트렁크, 테일램프 등 대부분 직선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덕분에 고급 승용차에 걸맞은 중후함을 갖출 수 있었다.

디자인 외 가격으로도 크게 화제를 모았다. 출시 당시 2.0 모델이 1,690만 원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다. 참고로 당시 중형차였던 스텔라의 가격이 530만 원~650만 원이었다. 최상위 3.0모델의 경우 2,890만 원이었다고 한다. 비싼 가격에도 그랜저는 크게 성공했고 풀체인지 전까지 9만여 대 가량이 팔렸다고 한다.

그랜저에 적용되었던
각종 첨단 사양들
그랜저에는 당시 가장 현대적인 옵션 사양들이 탑재되었다.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조절되는 다중 연료분사방식 MPi 엔진은 출력과 연비, 엔진 응답성을 향상시켰다.

이외에 고속도로 주행에 유용한 오토 크루즈 컨트롤, 운전자의 승하차가 편리한 팝업 틸트 스티어링 휠, 실내 정숙성을 높여주고 충돌 시 안전도가 높은 2중 접합 안전유리, ABS, ECS가 적용되었다.

이외에 국내 최초로 적용된 옵션 사양들도 많았다. ETACS는 마이크로컴퓨터가 운전자와 탑승객의 부주의를 경고등으로 알려주거나 이에 따른 14가지 기능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이외에 컴퓨터에 의해 원하는 온도로 자동 조절되는 오토 에어컨 시스템, 앞 좌석 등받이를 완전히 접어 뒷좌석 승객의 편안함을 높인 풀 플랫 시트, 제동거리를 대폭 단축시켜주는 4륜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을 대폭 개선한 슈퍼 밸런스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지금은 이보다 발전된 사양들도 기본으로 탑재되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첨단 사양들이었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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