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에 따르면 제네시스 신형 ‘G80’ 출시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졌고, SUV 모델 ‘GV80’ 출시 일정은 앞당겨졌다. 원래대로라면 G80 먼저 출시된 뒤에 GV80이 출시되는 것인데, 갑작스레 출시 일정이 변경된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갔다. 한편에선 “북미 시장을 위한 좋은 전략”이라 말하고, 다른 일각에선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눈치 보느라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정말 후자에 가깝다면 여러 가지가 불편하게 걸린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최근 변경된 제네시스 신차 출시 일정과 함께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전략 비판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자
“내수는 괜찮은데 북미가 위험”
사실상 미국 시장을 위한 조율
최근 비하인드 뉴스를 통해 관계자에게서 들은 출시 일정 변경 이유를 보도해드린 바 있다. 사석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 신차 출시 일정 변경에 대해 “수출 시장 때문이다. 지금 수중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어닝쇼크 사태를 겪었던 만큼 국내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았을 터인데 답변이 의외였다. 이에 대해 물으니 관계자는 “내수 시장은 지금 괜찮다. GV80 출시를 앞당긴 것은 수출 시장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수출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태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수출 시장은 북미 시장이다. 현대차는 지금 엔진 결함 화재 논란, 신차 출시 부재 등으로 북미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최근 북미 시장 실적 상황이 좋지 못해 현대차 내부 분위기도 좋지 못하고, 이를 하루라도 빨리 만회하기 위해 시들어가는 세단 대신 SUV를 먼저 출시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또한 GV80 신차 열기가 점점 빠져가는 상태고, 팰리세이드, 베뉴 등은 북미 시장에 공개만 되었을 뿐 아직 출시되기 전이라 신차 효과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상태다. 결론적으로 GV80과 G80 출시 일정 조율은 북미 시장을 위한 전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랜저와 G80 판매 간섭”
그랜저 때문에 출시 일정 조정?
그런데 최근 제네시스 신차 출시 일정 변경을 두고 국내 일각에선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보도를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오기도 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돌고 있는 의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하반기에 출시될 그랜저 부분변경 모델과 G80 출시 일정 변동이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가격대는 다르지만 크기가 비슷한 준대형 세단이기 때문에 판매량 간섭이 조금이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독립 브랜드라면서”
그런데 그랜저 때문에
제네시스 일정까지 변경?
해당 내용은 업계 관계자가 제보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제네시스 출시 일정 변동 이유가 그랜저 때문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면 여러 가지 깊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 독립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독립된 고급 브랜드로서 운영한다는 의지를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고수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랜저 판매 간섭을 고려하여 제네시스 신차 출시 일정까지 변경했다는 것이 맞다면 이는 현대차 스스로 제네시스와 현대차가 다를 것이 없다고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라는 꼬리표를 떼내야 하고,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가 출범하며 사라져버린 럭셔리 플래그십 모델을 다시 부활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럭셔리 브랜드를 표방한다면
제네시스는 장인 정신이 있어야
소재, 생산 과정, 무엇이든
제네시스 G80을 오토포스트 법인 차로 운용하고 있고, G70을 여러 차례 타보았으며, 최근에는 G90을 시승했다. 자동차가 좋고 나쁨을 떠나 제네시스 브랜드가 만든 자동차를 타면서 럭셔리한 고급 브랜드로서 갖춰야 할 ‘장인 정신’이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해보았다.
현대차 스스로도 장인 정신이라는 것을 마케팅으로 잘 활용하지 않는다. 메르세데스 벤츠, 렉서스 등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고급 브랜드들이 잘 활용하는 마케팅 수단이지만 현대차에게선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이렇다. 생산 과정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자주 나오느냐 따져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수입 브랜드 공장 방문과 관련한 기사는 외신뿐 아니라 우리나라 매체를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나 플래그십 모델에 대한 이야기라면 깨끗하고도 까다로운 생산 과정이 담기기도 한다.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수작업’, ‘장인 정신’이라는 키워드다. 대시보드 우드 트림을 깎고 있는 장인의 모습, 외관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생산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쓰인다. 보도자료뿐 아니라 럭셔리를 표방하는 자동차라면 제조사 홈페이지만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무균실처럼 깨끗한 공장 모습, 장인 정신이 깃든 까다로운 생산 과정을 아직 현대차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럭셔리한 고급 브랜드를 표방하는 제네시스 정도라면 이런 마케팅과 생산 과정도 필요하다. 특히 그들이 신경 쓰고 있는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으려면 소비자가 자부심을 느낄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소재를 좋은 것을 쓰든, 생산 과정에서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든 어떠한 것 하나라도 하루빨리 충족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라는 꼬리표를 떼어야 한다면 적어도 플래그십 모델인 ‘G90’에서만큼은 이 정도 과정을 거칠 때도 되었다.
제네시스 분리를 위해서
현대차에겐 독립적으로
플래그십 모델이 필요하다
‘에쿠스’는 국산 고급차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은 에쿠스에서 그랜저로 내려왔다.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이 그랜저로 충분한지, 제네시스 때문에 그랜저 이상의 플래그십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브랜드 독립 과정 중 하나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그랜저 부분변경 모델 출시 일정 때문에 신형 G80 출시 일정이 변동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현대차와 제네시스 판매 간섭을 현대차 스스로가 신경 쓴다면 현대차와 제네시스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랜저를 지금보다 더 고급스럽게 만들 수 없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에쿠스 부활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로서 이렇다 할 플래그십 모델이 없다면 여러모로 제약이 많을 것이다.
렉서스에게 ‘LS’가 있다고 해서 토요타가 ‘센추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제네시스에게 ‘G90’이 있다고 해서 현대차가 ‘에쿠스’를 포기할 이유도 없다. 판매 간섭과 실적은 가장 많이 팔리는 중간급 모델에서 걱정할 사안이다. 이미지를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플래그십 세단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보아야 한다.
오랜만에 라면 논평
이렇게 갔었다면 어땠을까
오랜만에 라면 논평을 하려 한다. ‘라면’, 말 그대로 하나의 가설을 가지고 이랬다’라면’, 저랬다’라면’ 논평을 이어가는 것이다. 만약 현대차와 제네시스가 이렇게 갔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이렇게 갔더라면 제네시스를 해외 위주로 판매해도, 국내에는 제네시스 대신 에쿠스만 판매해도 큰 반발은 없었을 것이다.
‘해외에만 있고 국내에는 없는 것’을 반가워할 소비자는 없다. 만약 그것이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것이라면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해외에는 없고 국내에만 있는 것’을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 적어도 국내 소비자를 생각하는 자동차 제조사라면 이런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G90은 LS처럼
해외 시장을 위한
G90은 LS처럼 갔더라면 어땠을까. LS는 일본 시장보다 미국 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자동차다. 이처럼 G90을 한국 시장보단 미국 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을 제대로 공략한 자동차로 탄생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과 기본기를 덤으로 갖추고 말이다.
렉서스는 LS에 깃든 장인 정신을 크게 강조한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장인으로 불리는 ‘타쿠미’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참여했을 정도로 ‘렉서스’라는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을 좋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타쿠미 – 인간 공예 생존을 위한 6만 시간에 대한 이야기’ 다큐멘터리는 뉴욕 DOC NYC 영화제에 초연되었다. 여기에는 미슐랭 주연 요리사, 전통 종이 공예 예술가, 자동차 장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 회사 중 한곳에서 일하는 목수 등 일본 장인 4명이 등장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자동차 장인은 렉서스 소속이다. 렉서스 인터내셔널 글로벌 브랜드 책임자는 “타쿠미라는 개념은 30년 전부터 렉서스 브랜드의 핵심이 되어왔다”라며, “우리 고수들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6만 시간(30년 이상 근무) 이상의 경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장인 정신을 특히 강조하는 렉서스는 이 다큐멘터리가 뉴욕 영화제에 초연됨으로써 렉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을 북미 소비자들에게 또 한 번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에쿠스는 센추리처럼
국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 깃든 자동차로
해외 시장만을 위해 제네시스를 판매한다면 당연히 국내 소비자 반발이 심할 터. 이 반발을 없애기 위해서 국내 소비자들만을 위한 좋은 자동차를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토요타가 일본 시장 VIP들을 위해 센추리를 만드는 것처럼 현대차는 한국 시장 VIP들을 위해 에쿠스를 만드는 것이다.
에쿠스로 제네시스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에쿠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과 럭셔리함, 고급스러움을 강조해주면 된다. 토요타는 센추리를 만들 때 렉서스 못지않은 까다로운 생산 과정을 거친다. 토요타는 센추리 생산 과정을 직접 전 세계에 알렸다. 센추리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고,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플래그십 모델이라면 이 정도 역할은 기본이다.
센추리가 생산되는 공장은 일반 자동차 생산 공장과는 매우 다르다. 조립 라인이 없고, 길게 늘어선 차들도 없다. 기계음도 없이 조용하다. 이 공장에선 숙련된 장인 몇 명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자동차를 만든다.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 생산 과정 모두에 장인 정신이 들어간다.
센추리 측면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곡선은 숙련된 장인을 통해 만들어진다. 프레스 처리 후 차체 패널에 남아있는 사소한 결함들을 장인이 섬세하고 매끄럽게 다듬는다. 많은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토요타 플래그십 모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특별함을 좋아하는 VIP들을 제대로 겨냥했다.
앞 좌석 시트 사이에 있는 센터 콘솔은 수작업으로 장착된다. 좌석 사이 간격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이 직접 작업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장인들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정도를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볼트를 돌려 센터 콘솔 위치를 조정한다.
마지막으로 형광등이 페인트를 정상적으로 반사하는지 확인한다. 제대로 도색 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만약 에쿠스가 부활하여 센추리처럼 까다롭게 만들어지고,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서만 판매되며, 제네시스는 해외에서만 판매된다고 가정해보자. 에쿠스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소비자가 있을까.
플래그십 모델은
제조사의 과시이자
소비자의 자부심이다
현대차가 내놓는 플래그십 모델을 탈 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최근 시승한 G90에 대한 이야기를 시승기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겠지만 ‘제네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 없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제네시스는 해외 시장 공략만을 위한 고급 브랜드로 빼고, 반대로 국내 시장에는 해외에선 만날 수 없는 특별함이 담긴 현대차만의 플래그십 모델을 이어갔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독립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네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 제네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 제네시스를 이용하는 VIP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반대로 한국 소비자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 한국 소비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을 이용하는 VIP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요소도 필요하다.
제네시스에게 현대차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네시스 때문에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틀 안에 가둬놓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해외 시장 실적 회복을 위해 다른 브랜드들에서 느낄 수 없는 제네시스만의 특별함이 있는지도 깊게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적어도 제네시스가 럭셔리를 표방하는 브랜드이고, 현대차가 지금보다 훨씬 크게 성장해야 한다면 생산 과정부터 바꿀 필요도 있어 보인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