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룹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북미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문제는 뒤에서 1등이다. 솔직히 거짓말일 줄 알았다. 아니, 거짓말이길 바랬다. “그래도 자동차 제조사가 몇 개인데 설마 꼴등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팔렸길래 꼴등을 기록했나 싶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북미에서 판매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판매량을 집계해보았다. 일각에선 “아직 제네시스 신차가 북미에 출시되지 않아서 판매량이 저조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제네시스는 그동안 북미시장에서 얼마나 판매되었고, 또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지 살펴보자.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제네시스 북미 판매량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에디터
2015년 브랜드 출범 이후
줄곧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2015년, 제네시스를 론칭하며 미국 고급차 브랜드 시장에 진출했다. 브랜드 출범 당시 현대차 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제네시스는 2004년 개발 단계부터 10년 넘게 준비해 왔으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성장해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출범 이후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 판매량을 매년 10% 이상 증가시킬 것을 예상했으며, G80에 이어 플래그십 세단인 G90, 콤팩트 세단 G70을 연이어 론칭해 라인업 확장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북미시장에선 이미 독일,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가 고착화된 상태였으며, 부족한 제네시스 라인업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한때 G70이 북미 시장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이는 잠깐에 불과했다.
2020년 3분기
북미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
1위 렉서스 꼴찌 제네시스
최근엔 2020년 3분기 북미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 집계 결과, 제네시스가 모든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를 통틀어 꼴찌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오토모티브 뉴스에 따르면, 일본 브랜드인 렉서스가 3분기 미국에서 7만 5,285대를 판매하며 1위를 기록했고, 뒤를 이어 메르세데스 벤츠가 6만 9,681대, BMW가 6만 9,570대를 판매해 상위권에 안착했다.
전기차 브랜드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테슬라 역시 6만 4,000대를 판매하며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 4위에 이름을 올려 주목받았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고작 3,845대를 판매하는데 그쳐 다섯 브랜드가 합쳐 28만 대가량을 판매하고 있을 때 시장 점유율 1%도 확보하지 못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기록했다.
2019년 판매량도
제네시스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제네시스 판매량 부진은 비단 최근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해 북미 시장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메르세데스 벤츠가 35만 7,729대를 판매하며 1위를 차지했고, BMW가 32만 4,826대를 판매하며 2위를 차지했다.
올해 3분기 1위를 기록한 렉서스는 29만 8,114대를 판매하며 3위를 차지했는데, 제네시스는 고작 2만 1,233대 판매에 그쳐 120만 대에 가까운 다섯 브랜드 총 판매량 중 점유율 2%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과 비교해 보아도 제네시스는 북미시장에서 최하위권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혹시 지난해에만 판매량이 급락한 게 아닐까 싶어 그 전해인 2018년 판매량도 살펴보았으나,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여전히 30만 대를 넘게 판매했으며, 렉서스 역시 29만 8,320대를 판매해 30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테슬라 역시 19만 1,627대를 판매했고, 제네시스는 1만 312대를 판매해 점유율 1%를 기록했다. 오히려 2019년엔 2만 대가량을 판매했으니 전년대비 판매량이 2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었다. 이는 대부분 G70 판매량이 크게 기여를 한 것이다.
북미서 수상한 다양한 이력들
실제 판매량과의 괴리감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라면 잊을만할 때마다 뉴스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제네시스의 북미 수상 이력이나, JD 파워가 진행한 신차 품질조사에서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등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소비자조사 기관인 JD 파워(J.D.POWER)의 조사 결과 2020년 신차 품질 조사에서 제네시스는 렉서스나 메르세데스 벤츠를 제치고 상위권에 안착했다.
당시 “미국 소비자들은 제네시스를 렉서스 보다 좋아한다”, “제네시스가 렉서스를 제쳤다” 류의 기사들이 쏟아져 일반 대중들은 “미국에서 제네시스가 인정받고 잘나가고 있구나”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판매량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많은 소비자들은 “매번 수상 이력만 강조하고 판매량은 쏙 빼먹는 지루한 마케팅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이런 마케팅들은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않음을 강조했다. 각종 수상 경력보단 실제 판매량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으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G70이 북미 시장에서 흥행하며 제네시스 판매량이 많이 올라 라이벌을 위협할 수준이다” 와 같은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G70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 제네시스 판매량이 상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남들이 연간 30만 대를 판매하고 있을 때 고작 2만 대를 판매한 것을 두고 “눈에 띄게 판매량이 상승해 라이벌 제조사들을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자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특정 수입차 브랜드가 국내서 연간 1만 대를 판매하다 특정 차종 때문에 2만대로 상승한 걸 두고 터줏대감인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를 위협하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GV80, 신형 G80 출시로
반등 노리려는 현대차의 전략
일각에선 “제네시스 GV80과 신형 G80이 아직 북미시장에 출시되지 않아 판매량이 저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향후 판매량을 타 브랜드들과 비교하며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국내 시장에 출시하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GV80과 신형 G80은 당초 올해 여름 북미 시장에 출시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연기되어 가을쯤 공식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두 차량이 북미 시장에 출시된다면 신차효과에 더불어 판매량도 상승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선 성공한 두 차량이 북미에서도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제네시스 북미 법인은 “GV80 사전계약 대수가 9,400대를 넘겨 향후 판매량이 기대된다”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신차 성공 여부에 따라
향후 제네시스 전망도 달라질 것
중요한 건 이런 흥행가도가 출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를 점쳐봐야 한다. 만약 북미시장에서 GV80과 G80이 역대급으로 흥행에 성공하여 매월 5,000대 이상 판매가 된다고 가정할 시 제네시스 연간 판매량은 10만 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제네시스가 라이벌로 지목하는 렉서스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연간 2~30만 대를 거뜬히 판매하는 제조사들이다.
제네시스가 이들을 단순히 판매량으로 따라잡기 위해선 GV80과 G80이 매월 최소 1만 대 이상 판매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수치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현재 제네시스는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이들을 쫓아가는 후발주자로써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출범 당시 렉서스를 포함한 다양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라이벌로 지목했으나 판매량만 놓고 보자면 그들은 제네시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해외에서 인정받으려면
안방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그들이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해외에서도 거듭나기 위해선 국내 소비자들의 목소리에도 조금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올해 제네시스는 내수 시장에서 역대급 성장률을 기록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판매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GV80과 신형 G80에선 다양한 결함 및 품질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소비자들 사이에선 “결함투성이”라는 오명을 얻고야 말았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생산하는 자동차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신형 제네시스를 경험한 고객들이 성능과 품질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들이 다시 제네시스를 선택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인정받으려면 먼저 안방에서부터 내실을 제대로 다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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