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전기차를 사야 한다”와 “아직 전기차는 시기 상조다”라는 의견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 기준으로 봐도 전기차가 대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2016년 이후 꾸준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해외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건 주행 가능 거리다. 주행 가능 거리가 짧으면 그만큼 충전소에 자주 가야 하며, 내연기관처럼 짧은 시간에 연료를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1회 완충 시 주행 가능 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 파는 일부 수입 전기차들은 유렵에서 인증받은 주행거리와 국내 인증 거리의 차이가 매우 커 주목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로비 때문에 벌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전기차 주행거리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에디터
2016년 이후 줄곧
전기차 판매량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은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주로 정부 기관에만 소량 보급되던 2015년, 2016년과는 다르게, 니로 EV와 코나 EV가 등장한 이후론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지난해엔 보조금을 받게 되면 5천만 원 대로 구매할 수 있는 테슬라 모델 3도 출시가 되어 전기차 판매량은 더욱 상승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어, 연말까지 판매되는 대수를 합하면 5만 대에 근접하는 판매량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젠 전기차 사야 한다”vs
“아직은 시기 상조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소비자들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전기차 동호회 회원 수는 17만 명이 넘었으며, 수도권에 거주한다면 주변에 테슬라를 구매했거나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도 꽤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분명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기차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이제 무조건 전기차를 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소비자들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전기차는 시기 상조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들은 아직 기술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전기차는 꾸준한 연구개발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당장 내연기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코나 화재사건은 아직 전기차를 사기엔 시기 상조라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활용된다.
실제 전기차 소유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1회 완충 시
주행 가능한 거리다
전기차를 실제로 소유하는 차주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터리 완충 시 주행 가능 거리다. 과거,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의 전기차는 대부분 배터리 완충 시 주행 가능 거리가 200km 안팎이었으며, 이에 충전소를 자주 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코나 일렉트릭이 출시되면서 국산 전기차 주행거리 400km 시대에 접어들었다. 코나 일렉트릭은 좋은 도로환경과 운전습관이 더해지면 많게는 500km까지 주행이 가능하기도 했었다. 이 정도면 충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실용적인 데일리카로 탈만하다는 의견들이 더해졌고, 그렇게 코나 일렉트릭은 꾸준히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테슬라 모델 3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입차 제조사들도
연이어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다
올해는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에서 전기차를 선보였다. 독일 브랜드인 아우디는 자사 최초의 전기차인 E-트론을 선보여 완판했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EQC를 출시했다. BMW는 과거 I3 때부터 전기차를 판매해 왔으니 독일 3사 중에선 국내에 가장 오랫동안 전기차를 판매한 회사다.
르노삼성 역시 유럽 베스트셀링 카인 조에를 출시했고, 푸조는 조에와 경쟁하게 되는 e208을 출시하며 판매량에 박차를 가했다. 국산차 제조사 뿐만 아니라 수입차 제조사들까지도 전기차 출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그만큼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수요는 공급을 낳는다.
유독 국내에만 들어오면
주행 가능 거리가 짧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업계에선 유럽에서 높은 주행 가능 거리를 자랑하며 잘 팔리고 있는 일부 수입 전기차들이 유독 국내에만 들어오면 주행 가능 거리가 짧게 인증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특히 지난 7월 출시된 푸조 e208 전기차는 WLTP(세계 표준 자동차 시험 방식)에서 인증받은 주행 가능 거리 340km보다 약 28% 감소한 244km로 국내 인증을 마쳤다. 거리로 따지자면 거의 100km가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푸조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푸조 관계자는 “주행거리 결과에 대해 놀랐다”라며 “유럽 28개국이 모여 만든 WLTP에서 340km로 인증을 받았는데 국내에선 244km였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실제 주행 테스트에선 주행 가능 거리가 300km를 넘어 표시된 전비보다 월등한 결과가 나왔기에 두 번 놀랬다”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럽차는 2~30% 감소
코나 일렉트릭은 10%에 불과했다
유럽에선 같은 WLTP 기준으로 주행 가능 거리 395km를 기록한 르노 조에 역시 국내에선 309km로 거의 100km에 가까운 수치가 빠진 모습이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22% 정도 감소했다. 프랑스 제조사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EQC는 WLTP 기준 417km, 환경부 기준 309km이며 (26% 감소), 아우디 e 트론은 WLTP 기준 436km, 환경부 기준 307km (30% 감소), 재규어 i-PACE는 WLTP 기준 480km, 환경부 기준 333km (30% 감소)다.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테슬라 모델 S 100D 롱레인지는 WLTP 기준 610km, 환경부 기준 451km (26% 감소)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 3는 스탠다드가 WLTP 기준 409km, 환경부 기준 352km이며(14% 감소), 롱레인지 후륜구동 모델은 WLTP 기준 600km, 환경부 기준 492km(18% 감소)다. 퍼포먼스 모델은 WLTP 기준 530km, 환경부 기준 415km (22% 감소)다.
그렇다면 현대 코나 일렉트릭은 어느 정도일까. 코나 역시 WLTP 기준보단 국내 환경부 기준 주행 가능 거리가 짧았다. WLTP 기준 449km를 달릴 수 있으며, 환경부 기준으로는 406km로 인증을 받았다. 그래도 국내에만 들어오면 100km에 근접한, 혹은 더 줄어드는 다른 수입차들 대비 코나 일렉트릭의 주행 가능 거리는 감소 폭이 매우 적은 편이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10% 감소에 불과하다.
조금 더 실제 주행 환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기준은
WLTP 방식이다
WLTP 측정 방식과 환경부 측정 기준은 어떤 차이가 존재할까? 먼저 WLTP는 UN 자동차 법규 표준화 기구에서 준비한 연비 측정 방법이다. 2017년 9월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했기에, 이후 등장한 유럽차는 모두 WLTP 방식으로 연비를 측정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측정 방법이기 때문에 테스트 환경이 실제 운행과 매우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WLTP 방식은 1970년대부터 사용되던 기존 NEDC 대비 측정 거리를 12km 늘렸다. 측정 평균속도 역시 47km/h로 기존 33.4km/h보다 높였으며, 최고 속도 역시 130km/h로 기존 보다 10km/h 빨라졌다. 속도별 주행 타입 역시 4가지로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 도입되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은 환경부에서 인증을 담당한다. 시가지 모드인 FTP-75 모드와 HWFET 고속도로 모드 두 가지로 나눠서 측정을 하게 된다. 환경부 방식은 배터리 상태나 주행 온도에 따른 편차가 크기 때문에 측정한 거리의 70%만 인정하게 된다.
시내와 고속도로, 급가속, 에어컨 가동등 5사이클 보정식을 대입해 복합 연료 효율을 산정하는 것이 국내 전기차 인증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유럽 대비 전비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조건으로
테스트했는데 왜…”
의문을 품는 수입차 제조사들
특히 오늘의 주인공인 푸조 e208은 무려 30%가 감소한 수치로, 차이가 컸는데, 이를 두고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정부기관 사이의 로비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겠냐”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현대 코나 일렉트릭은 같은 조건과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도 유독 국내에서의 주행 가능 거리가 높게 나온다”라며 유럽 WLTP에서 코나 일렉트릭과 비슷한 주행 가능 거리를 기록한 아우디 e트론이 국내에 들어와선 코나 일렉트릭과 100km 이상 차이가 나는 건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임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아우디 e트론의 WLTP 기준 436km와 코나 일렉트릭의 449km는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나 환경부 기준으론 e트론이 307km, 코나 일렉트릭이 406km로 무려 100km나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아우디 코리아 역시 e트론 출시 당시 기자들에게 “유럽과 한국 주행 가능 거리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그들도 실제 주행거리보다 적게 나온 수치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시 아우디 코리아 제품 담당은 “실제 주행 가능 거리는 400km를 넘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전비 인증은 307km로 승인이 나서 당황스럽다”라며 “다시 한번 연비 인증을 받아보도록 해야 될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분명 유럽 기준으로 같은 테스트 조건에서 실시한 결과임에도 유독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전기차들 주행 가능 거리가 낮아지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별로, 측정 방식 별로 주행 가능 거리에 변화가 생길 순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측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국산차 보다 수입차 전비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선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만 유독 주행거리 차이가 적게 나기 때문에 이를 로비의 결과라고 보는 일부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들릴 수밖에 없다. 환경부에 해당 내용을 문의해본 결과 “정해진 측정 방법에 따라 나오게 되는 결과”라는 답변만을 받았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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