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한국에 이런 차 있는 줄 몰랐죠” 모두를 놀라게 만든 한정판 마티즈 국내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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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박민혁’님 제보)

대한민국 경차 시장의 개혁을 한 차를 골라보자면 우리는 무얼 먼저 생각할까? 티코? 아토스? 비스토? 다들 통칭 선대 경차 시장의 1세대들의 선배들이 맞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각각의 색깔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자동차 시장에 이바지한 차들도 물론 맞다. 다만 무채색 계일이 만무하던 자동차 시장에 특이한 컬러로 칙칙한 도심의 분위기를 한껏 화사하게 만들어준 차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 만나볼 대우차의 마티즈다.

코드명 M100 1998년 3월에 출시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한 유선형 바디에 총명한 눈빛을 발사하는듯한 동그란 눈망울, 그리고 일명 “황마”로 전설을 써 내려간 차로써도 유명한 차다. 사실상 국내 경차 시장을 제패한 녀석이나 다름없었고, IMF의 직격타를 맞은 시기에 출시를 하여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녀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다른 트림도 존재했는데…. 오늘 오토포스트에서는 1세대 마티즈에서 유난히 특별했던 녀석을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권영범 수습 에디터

생각보다
유학파
마티즈의 고향은 경남 창원이다. 이 말인즉 대우 국민차 사업으로 소속된 대우 중공 소속의 생산라인을 이용했다.

출시 당시, 나름 귀여운 모습의 포인트라면 전면 유리 상단 루프에 안테나가 달렸다는 점이 꽤나 눈에 띠였고, 다분히 유럽차스러운 모습이었다.

당시 대우차는 이탈리아 쪽 여러 회사들을 통해 디자인을 맡겼었는데, 마티즈는 이탈디자인에서 가져왔다. 원래는 이탈리아의 국민차 피아트 친퀘첸토(500)의 후속으로 사용하려던 디자인이었고, 이탈디자인은 그걸 1992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루치올라 라는 컨셉카로 출품하게 된다.

출품 뒤 피아트의 컨펌을 받기 위해 한껏 들뜬 이탈디자인이었지만, 피아트가 놀랍도록 관심을 주질 않아 그 디자인이 1992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뻔했다. 짚신도 제짝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대우차가 이 루치올라의 디자인 컨셉이 대우차와 딱 들어맞는다는 걸 보고 빠르게 사버렸다.

1998년 4월 1일
본격적인 판매 개시
마티즈의 제원은 전장 3,495mm, 전폭 1,495mm, 전고 1,485mm, 휠베이스 2,340mm였다. 당시 마티즈는 2인승 밴과 5인승 승용 모델로 나뉘었고, 수동 5단, 자동 3단, 최악의 내구성 덕분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지옥의 미션 CVT까지 총 3가지를 제공했다.

작고 아기자기한 외모와 달리 당시에는 경차치곤 꽤나 실내공간이 넓었다. 엔진룸을 한계치까지 빼놓은 설계 덕에 당시에 키 180cm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성인 남성이 탑승하여도 제법 괜찮은 시트 포지션이 나왔다. 엔진은 0.8L의 배기량을 가졌고 최대 출력 52마력, 최대 토크 7.3kg.m로 지금 나오는 경차 기준으로는 빈약하지만, 공차중량 780kg의 놀랍도록 가벼운 무게 덕분에 수동 변속기 모델은 경쾌한 주행이 가능했다.

(사진 = 보배드림 ‘국내산쇠고기’님)

오늘의 주인공
D’art
첫 출시인 1998년 같은 해에 마티즈 d’art가 탄생했다. 월 50대 한정 판매로 생산 라인에서도 하루에 2~3대가량만 만드는 차였다. 심지어 경차인데 수작업 생산이었단 점에 눈길을 끈다. 초록색의 바디 컬러는 마치 영국차의 브리티시 그린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당장 트렁크에 GB 스티커가 붙어 있을 것만 같다.

일종의 스페셜 에디션이던 디아트는 놀랍게도 휀더와 헤드라이트를 감싸고 있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크롬 악세서리가 순정이다. 루프는 베이지 컬러로 도색한 것도 당연히 순정이고, 프론트 범퍼에 붙어 있는 철제 가드도 순정이고 BBS 휠의 디자인을 연상케하는 그것도 물론 순정이다.

(사진 = 보배드림 ‘XTOSCA’님)

당시에는 경차 규격으로는 굉장히 광폭 사이즈였던 175mm 시리즈 타이어를 장착했다. 경차에는 사치스러운 우드그레인, 최고급 직물 시트, 가죽 스티어링 휠, CD 체인저, 투톤 컬러의 대쉬보드가 적용되었고, 계기판에도 크롬도금 테두리가 들어갔으며 안전사양으로는 듀얼 에어백과 ABS가 들어갔다.

아 참, 90년대 경찬데 안개등이 무려 프로젝션 타입이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신경 써서 만들어낸 차량인 게 바로 느껴진다. 만듦새와 마감 처리가 염가형 차량인 걸 감안해도 훌륭하다. 이 고급 지고 훌륭한 마티즈 d’art는 경차의 영역을 초월한 795만 원이란 가격을 자랑했다. 당시 판매했던 현대의 아반떼 깡통이 758만 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차였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약간 여담식으로 풀어보자면, 대우차에서 CVT 미션을 처음으로 선보일 때 같이 나왔던 트림이다. 에어로 파츠를 장착하고 CVT 미션을 장착하여 나왔으며 가격은 출시 당시 590만 원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깃 거리가 있다. 당시 현대차가 아토스를 내놓고 공격적인 영업을 하던 시기였는데, 현대차 측에서 마티즈 스포츠에 대한 규격 태클이었다.

마티즈 스포츠는 바디 파츠로 인하여 전폭, 전장 제원이 당시 경차 규격을 초과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출시되고 몇 달 안되어 바로 단종이 돼버렸고, 그러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전해져 내려오는 풍문으로 변한 것이다. 현대차의 아토스가 날이 갈수록 마티즈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커버리자 오래전부터 업계에선 유명한 우스갯소리로 통하고 있다.

대우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역시나 시대 배경이 중요한 거 같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어두운 역사가 존재한다. 하나같이 다들 평범하고, 그냥 별다를 것 없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대한민국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없어지는 건 예삿일이고, 무너지지 않을 거 같았던 기업들은 파산하여 지금은 잊혀버렸다. 그만큼 그때의 시대상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패턴이 일상이었고, 뭐든지 하나같이 다 따지고 따져 보다 저렴하고 경제적인 물건을 사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였다.

대우차는 티코부터 다져온 경차의 노하우, 그리고 탁월한 디자인으로 대우차의 효자상품으로 등극했다만, 사실 이 당시에는 대우차도 부도가 되었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대우 앞으로 존재하는 계열사만 41개였고 국외법인만 396개였던 대우였다. 마티즈가 대우차의 효자상품이었다 한들 대우그룹 내부적으로 500억 달러라는 부채가 존재해 마진율이 낮은 경차를 아무리 많이 팔아봤자 큰 도움이 되진 못했었다.

연어가
되지 못한 채
부실기업인 게 드러나면서 대우는 더욱더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1999년 8월 26일 대우그룹은 구조조정으로 국내 계열사 41개 중 16개를 매각, 남은 25개의 회사 중 12개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그룹의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사실상 오리지널 대우차는 이 역사에서 끝을 맞이했다.

재계 서열 4위의 대우였던 찬란한 시절은 뒤로하고 GM에 인수되어 마티즈 2가 탄생한다. 이후로 GM대우를 거쳐 쉐보레의 사명으로 바뀌기까지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대우였다. 지금은 비록 대우자동차라는 이름을 다신 불 수없고 돼지코 마크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경차 시장을 주름잡고 선구자 역할을 해내었던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들 기억에는 영원히 황금 마티즈가 존재할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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