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거 진짜 부자들의 차 아닌가?” 무려 서울 지역 번호판까지 달고있는 전설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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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던 도요타 크라운
한때 신진 자동차에서도 조립생산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사진에 보이는 크라운은 신진 자동차 크라운?!

4세대 크라운 / 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이상하’님 제보

도요타 크라운, 일본 내수 시장용 오너 드리븐 지향의 후륜구동 고급 세단이다. 크라운으로 말할 거 같으면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던 자동차 중 하나로서, 1세대가 출시된 1955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무려 15세대나 거친 장수 모델이다.

그런 크라운이 어째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기록이 되었는가 살펴보면, 지금은 없어진 신진 자동차 그룹과 연이 깊다. 크라운의 시작은 초반부터 고급차를 지양하는 모델이었고, 꽤나 오랫동안 판매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과연 크라운이 가진 매력과 고급차로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해보자.

 권영범 에디터

토요펫이라는
오명을 남긴 1세대 크라운

1955년에 데뷔를 한 1세대 크라운, 도요타가 당시 북미 수출에 지대한 관심이 몰려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해외 제작사와 제휴하지 않고 미제 승용차의 디자인 요소와 상품성을 구성을 벤치마킹하여, 도요타 자체적으로 만든 순수 독자 개발 모델이다.

태평양 전쟁 이후 고급 승용차의 상징이 된 미국제 세단은 크라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당시 뒷좌석의 승하차 편리성을 위해 수어사이드 도어가 적용된 게 특징이다. 더욱이 트럭의 플랫폼을 공유하여 어설픈 승용차를 만들어내던 시절과는 달리, 크라운은 ‘고급차’라는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승용차 전용 섀시 프레임을 개발하여 활용하였고, 승차감을 위해 전륜 더블 위시본, 후륜은 리지드 액슬 방식의 현가장치를 사용했다.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조합의 현가장치다. 그러나, 당시 일본 내부적으로는 ‘일본 최초 독립현가 장치 승용차’라는 타이틀을 거며 쥐는데 성공한 차량이었다.

그와 동시에 도요타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승용차였다. 그러나 저조한 성능과 비싼 가격대는 곧바로 혹평으로 이어졌고, 도요타의 스펠링과 발음의 이유로 토이(Toy), 펫(Pet) 같은 차라고 조롱받기 일쑤였던 시절이 있었다.

1세대의 실패는
곧 약이 되었다

2세대 크라운은 일본의 새로운 소형차 규격에 맞춰 개발되었다. 전장과 전폭을 대폭 늘렸고, 전고는 한껏 낮췄다. 특히 전면부 마스크를 보면 도요타의 ‘T’를 연상케 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나름 인상적이다.

당시 일본은 고속도로의 정비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도요타 또한 2세대 크라운을 통해 대응하기 시작했고, 성능 개선에 큰 힘을 쏟았다. 1세대 크라운에서 사용하던 사다리꼴 섀시 프레임에서 X형 프레임으로 개선되어 강성을 높이는데 힘썼다.

세단을 기본으로 하여 스테이션왜건까지 출시하게 되었다. 이름은 ‘크라운 커스텀’이며, 대한민국은 4도어 세단을 생산 및 판매하였다.

당시 신진 자동차는 도요타와 히노 자동차하고 기술을 제휴하던 시절이었다. 대형 트럭과 버스를 만들었고, 고급 세단이었던 크라운도 만들어 팔던 시절이다 보니 한때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하던 자동차 회사 중 하나였다.

이때는 현대차도
어찌 못했던 벅찬 상대

2세대 크라운의 히트는 신진 자동차의 콧대를 높여놨다. 당시 이제 막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독일 포드에서 받아온 20M이라는 차량을 조립하여 판매하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신진 자동차 또한 이에 질세라 3세대 크라운을 출시하게 되는데, 워낙에 관용차로 많이 사용되던 차량인지라 오늘날 어르신들께 “크라운을 아십니까?”라고 여쭤보면 기억해 내는 차가 바로 이 3세대 크라운이다.

아무튼, 신진 자동차가 내놓은 3세대 크라운은 역시나 대히트를 치고 말았다. 현대자동차가 야심 차게 내놓았던 포드 20M은 가볍게 눌러버렸고, 대한민국 도로에서 크라운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었다.

이 3세대 크라운부터 대한민국 시대극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자주 출현하게 되는 차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부잣집 혹은 직급이 높은 공무원들이 성공을 뽐내기 위해서 탔던 차량이 바로 크라운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선 오너 드리븐의 역할로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건, 일본 내에선 오너 드리븐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자가용 운전자를 타겟으로 한 광고 마케팅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역대 크라운들 중 가장 성공한 모델로도 손꼽을 만큼 인기가 가장 좋았다고 전해진다.

사진에 보이는 모델은
1979년 가장 마지막 모델 수퍼 살룬

4세대 크라운부터 스핀들 쉐이프라는 곡선이 가미된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언덕 모양의 디자인은 고래를 연상케 하여, 별명 또한 ‘고래’라는 애칭이 있었던 모델이었다. 당시 크라운이 내세웠던 첨단 사양은 3단 전자식 자동 변속기와 ECS다.

“아니 1960~1970년대에 벌써 ECS가 있었단 말인가?!”라고 놀라워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 이 ECS의 약자는 ‘Electronic Skid Control’의 약자다. 즉 오늘날의 ABS와 같은 역할이었으며, 이마저도 리어 휠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를 감안하여 바라보면 한참이나 앞서나간 옵션이었다.

앞서나간 건 옵션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내에서도 앞서나간 유선형 디자인은 크라운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고객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자가용 오너들의 비율을 높이고자 시도했던 디자인은 곧 역대 크라운들 중 가장 실패작이 돼버렸으며,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닛산의 세드릭과 글로리아에게 역전을 당하는 참패를 맛보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모델은 4세대 크라운 중 가장 마지막 모델로서, 신진 자동차가 생산하여 판매하던 모델은 아니다. 신진 자동차가 판매했던 크라운은 1972년 9월을 끝으로 단종이 돼버리는 수순을 밟게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 4월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중국과 통상을 원하는 비적성 자본주의 국가에 요구한 4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는 저우 4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저우 4원칙에 조항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한민국과 타이완에 거래하거나 투자하고 있는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었다.

중국의 고급차 시장이 막강하단 걸 진작에 알고 있던 도요타는, 결국 신진 자동차에게 일방적으로 크라운을 비롯한 모든 도요타 라인업 차량들의 라이센스 계약을 해지하였다. 당연하게도 도요타의 자동차로 먹고살던 신진 자동차는 타격이 엄청났으며, 곧바로 회사가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4세대 크라운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실패한 크라운이라는 오명을 남겼던 크라운은 일본 내수시장에서도 얼마 팔리지 못했으며, 1971년 7월에 신진 자동차에서 출시했던 4세대 크라운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판매가 되어 현재는 잔존 개체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올드 카의 반열에 오르고 난 뒤 재평가가 이뤄져 가치가 상승하는 역행을 맛보는 중이다. 올드 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4세대 크라운만이 가진 특유의 앞서나간 디자인은 재평가가 이뤄짐과 동시에 인기도 상승하고 시세도 뛰어오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도요타의 배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한때 잘나가던 회사들도 없어지는 게 자동차 회사인데, 과연 오늘날까지 신진 자동차가 존재했을까?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여쭤보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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