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그랜저도 명함 못내밀었죠” 한때 기아 최고급 기함으로 이름 날렸던 국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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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아차의 마지막 기함급 세단
그 이름은 엔터프라이즈
어째서 엔터프라이즈는 다른 모델들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했을까?

어느 한 오토큐에서 발견된 엔터프라이즈 / 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안윤성’님 제보

기아차의 마지막 기함이라 말하면, 현재 생산되고 있는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 K9이 존재하는데, 어째서 마지막이란 단어가 들어가는지 다소 의아해 하실 분들이 더러 계실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 1997년에 발발한 IMF 금융위기 때문에 기아차는 부도라는 현실을 맞이했고, 현대차에 매각된 이후 그들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며 서자의 위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현대차에 인수되기 전 기아차를 일컫는 말이 바로 (구)기아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는 현대차에 인수되기 전 마지막으로 특유의 엔지니어링 감성이 묻어나는 몇 안 되는 차량 중 하나이며, 현재 그 개체 수는 점차 줄어들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공도에서 보기 힘들어진 차량 중 하나가 되었는데, 과연 (구)기아차에서 만든 플래그십 세단인 엔터프라이즈는 어떤 모습을 갖췄을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해보자.

 권영범 에디터

좌 : 마쯔다 센티아 2세대, 우 : 혼다 레전드 2세대

혼다 VS 마쯔다의
피 터지는 싸움

과거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은, 대부분 해외 메이커들의 차량들을 기반으로 차량을 제작하거나 베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사실상 차량 원판 그대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가 대우차의 아카디아였는데, 혼다의 2세대 레전드를 수입해 한국에서 조립 판매하여 당시 고급차 시장에서 ‘고성능 고급 세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차량이었다.

당시 기아차는 마쯔다와 오랜 세월 기술제휴 관계를 맺어왔는데, 엔터프라이즈가 마쯔다의 기함 급 세단인 2세대 센티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외관만 한국 시장에 맞게끔 더욱 중후하고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변경하여 판매하였다.

엔터프라이즈의 디자인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

과거 고급차 시장은 한국의 지리 특성상, 전륜구동을 고집하였는데 엔터프라이즈만 후륜구동을 채택한 국산 고급 대형 세단이란 부분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기록을 가진 차량이었다. 아울러 전장 또한 5,020mm라는 기다란 차체를 가져, 국산차 중에서 가장 긴 차체를 가진 차량으로도 유명했다.

또한 마쯔다제 V6 JE-ZE계 엔진을 국내에 도입, 기존 오리지널 마쯔다제 엔진은 3.0L급 엔진이었지만, 기아차에서 자체적으로 보어를 확장하여 3.6L까지 배기량을 끌어올렸으며 당시 현대차의 그랜저가 국내 최대 배기량으로 홍보하던 미쯔비시제 3.5L 시그마 엔진을 의식하여 만든 결과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기아차를 넘어 국내
최고봉이었던 엔터프라이즈

1997년 3월 27일 기아차는 엔터프라이즈를 자신 있게 선보였다. 파워트레인은 V6를 기본으로 하여 배기량만 2.5L, 3.0L, 3.6L로 총 3가지로 구분되었으며, 2.5L 엔진 한정으로 초기형은 마쯔다제 엔진, 후기형은 영국 로버의 GV6 엔진으로 대체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로버 엔진은 한때 정비사들 사이에서 ‘타이밍 벨트’ 작업 기피 대상 1호인 차량이었다.

아울러 국내 유일 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답게, 코너링과 고속주행 능력은 경쟁 모델들에 비해 발군이었으며, 1997년 10월 뒤늦게 나온 체어맨에 의해 그 타이틀은 곧 깨지고 말았으나 대형차 세그먼트 내에선 여전히 코너링은 탁월한 차량이었다.

엔터프라이즈 광고 / 사진 = 기아자동차

1998년 데뷔한 그랜저 XG보다 1년 먼저 프레임 리스 도어를 적용한 차량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1990년대에서 프레임리스 도어는 ‘스포츠카’에서나 볼법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하드탑 도어’라는 명칭으로 광고하여 고급 세단의 품위를 강조하기도 했었다.

옵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산차 내에선 최초로 선보인 안마 시트가 충격적이었다. 아울러 TV기능이 통합되어 선보인 AV 시스템과 뒷좌석 에어밴트에 상하향 전동 기능을 넣어, 진정한 풀오토 에어컨을 구현해 냈다. 이 밖에도 16단 액티브 댐핑 서스펜션, 뒷좌석 쿨링 박스, 인텔리전트 전자동 변속기 등을 탑재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99년에 출시한 에쿠스 초기형, 사진에 보이는 오메가 엔진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에쿠스의 출시로 한없이
밀려버린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의 꽃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앞서 전술했던 1997년에 발생한 IMF 금융위기, 기아차의 부도로 인해 가뜩이나 전체적으로 고급차 시장이 침체기를 맞이해 판매량이 반토막 그 이상으로 줄어들어 처참한 현실을 맞이했던 엔터프라이즈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쟁사였던 현대차는 1999년 미쯔비시와 공동 개발한 에쿠스를 출시하게 되는데, 당시 미쯔비시가 개발한 신규 직분사 V8 엔진인 ‘8A8’형 엔진을 들여와 엔터프라이즈가 거며쥔 최대 배기량 타이틀을 뺏겼고, 전장과 전폭 또한 에쿠스가 압도적으로 더 길어진 탓에 덩치 싸움에서도 한없이 밀리게 돼버렸다.

이후 2000년, 기아차는 현대차에게 완전히 흡수되면서 2003년까지 근근이 양산되어 판매가 이뤄졌으나, 여타 다른 고급차들에 비해 판매량은 처참했었으며 엔터프라이즈의 자리를 후속작인 오피러스로 대체하여 오랜 시간 동안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의 자리를 지켜갔다. 시대적으로 잘못 태어난 엔터프라이즈, 과거 엔터프라이즈 동호회가 존재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확고했으며 팬덤이 상당히 두터운 차량이었다.

그러나 경쟁사들에 비해 하체 부품 부싱류의 내구성이 현저하게 낮았으며, 당시 야심 차게 내놨던 16단 전자제어 서스펜션의 내구성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때문에 그나마 살아있는 대다수 엔터프라이즈는 V6 2.5L 모델들이며, 상위 모델은 현재 대다수가 폐차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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