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천재들이 모이니 이런 결과물이… 한국 아빠들의 영원한 드림카라는 국산차

국산차 위상 높은 요즘
생각이 나는 차량 하나
국산차의 시작 그 순간엔
현대차의 포니가 있었다

공도에서 포착된 포니 픽업 / 뽐뿌

현시점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갖는 위상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유럽, 미국, 호주 등의 주요 해외 시장에 매년 차량 수출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출한 차량들에 대한 현지 반응도 굉장히 긍정적인 상황이다. 이들이 갖는 높은 위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은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의 존재겠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통해 유럽 업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리미엄 완성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오늘은 국산 완성차 업체들의 현재가 아닌 과거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간 과도기를 거쳐오며 성장을 반복해온 국산 완성차 업체들. 그 시작은 과연 어땠을까? 이들의 시작을 무작정 이야기하기엔 그 이야기는 너무나 길고 방대하다. 그러니 특정 차량을 콕 짚어 해당 차량을 통해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해 보겠다. 그런 의미로 선택한 이번 시간의 자동차는 현대차 최초 독자 생산 모델이자, 국산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 바로 현대차의 포니다.

조용혁 에디터

국산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었다

현대차 포니는 1975년을 시작으로 1990년까지 생산됐던 현대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자 국산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다. 오해할 수 있는 게, 포니가 현대차의 첫 차량은 아니다. 현대차는 포니 이전, 포드 모터 컴퍼니와 협력 관계를 맺고 포드의 차량들을 국내에 들여와 라이선스 생산 방식으로 차량들을 들여와 판매해왔다. 이렇게 판매한 현대차의 첫 차량은 포니가 아닌 코티나였다.

아무튼, 다시 포니로 돌아가자. 포니는 현대차가 포드 모터 컴퍼니와 결별을 한 직후, 일본 기업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제휴를 받은 후에 나온 첫 차량으로, 미쓰비시 랜서의 후륜구동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라이선스 생산 방식으로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한 차량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미쓰비시 랜서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들여와서 만들었다니, 독자 생산 모델이라 말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Sir George Turnbull creator of the Hyundai Pony / 사진=유튜브 채널 ” Robert Turnbull Mozart at Angkor”

포니의 위대한 시작
그 내막에 대해 알아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현대차의 독자 생산 모델이란 말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보겠다. 독자 생산 모델이란 쉽게 말하면 현대차 순수 기술을 활용해 꾸린 생산 라인으로 생산한 차량이다. 즉 미쓰비시와의 기술 제휴로 랜서의 플랫폼, 파워트레인 기술을 도입했을 뿐, 차량 개발부터 양산까진 모두 현대차의 순수 기술력으로 진행한 것이다.

당시 현대차는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조지 틴불을 부사장으로 임명, 포니 개발의 사령탑으로 활용했다. 조지 틴불은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 ‘모리스 마리나’라는 차량 개발에 참여한 바가 있는데, 그가 모리스 마리나 개발에 참여해 쌓은 경험의 상당수가 포니에 그대로 적용됐다. 실제로 포니와 마리나는 서스펜션 설계 구조 등 기술적으로 상당 부분이 비슷하다. 또한 포니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기업, 이탈디자인의 창업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담당했다. 현대차 포니는 이렇게 그 위대한 시작을 알렸다.

세상 밖으로 나온 포니가
세웠던 수많은 기록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포니, 정확히는 포니1. 해당 차량에 대한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출시 첫해인 1976년에만 무려 1만여 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해당 수치는 그해 한국의 자동차 판매량에 약 40%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이후 포니는 픽업, 왜건, 3도어 등의 다양한 차종으로 차량을 파생시켰고, 1980년에는 국산차 최초로 자동 변속기를 탑재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역사를 쓴 셈이다.

포니1은 또 다른 기록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국산차 최초로 해외 시장에 수출된 차량이란 기록이다. 1976년, 현대차는 남미에 있는 에콰도르에 포니1 5대를 수출하며 국산차 수출의 서막을 알렸고, 같은 해 바레인에는 8배 많은 수치인 40대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1982년에 대대적인 변화를 거쳐 포니2로 페이스리프트 했고, 이후 1990년까지 생산되다 단종을 맞이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현대 포니의 또 다른 이름
아버지 세대의 드림카

현대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자, 국산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었던 포니. 각종 엄청난 기록을 보유한 만큼, 포니가 가진 헤리티지 역시 상당하다. 현대차로선 포니가 갖는 헤리티지가 정말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포니의 헤리티지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됐는데, 이를 이어받은 차량이 여러분들도 잘 아는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어렸을 적, 지나가는 포니를 바라보며 어른을 꿈꿔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 포니는 아버지 세대들의 영원한 드림카로 자리하는 차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현대차는, 그리고 다른 국산차 업체들은 수많은 차량들을 개발하고 생산할 것이다. 그들의 위상이 높아져 가면 갈수록, 포니가 갖는 상징성은 그 빛을 잃지 않고 더 반짝이지 않을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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