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위장막을 두른 차가 더 익숙한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출시 전 기사가 출시 후 기사보다 많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GV80’ 테스트카를 매우 많이, 그리고 자주 봤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네티즌들도, GV80 구매를 기다리고 있던 예비 소비자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몇 번의 출시 일정 변동 후, 오토포스트가 몇 주 전 말씀드렸던 1월 15일에 GV80이 정식 출시되었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출시 현장에서 직접 살펴본 GV80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간 GV80에 대해 느꼈던 소회(所懷)와 GV80을 직접 타본 소감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자
사진 박준영 기자 / 김가영 PD
3년 위장막에 지친 소비자
출시 전 유출 사진과 더불어
“여백의 미”로 썰전까지
행사장에서 GV80을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 기대보단 걱정이 조금 앞섰다. 걱정이 7, 기대가 3정도 되지 않았을까? 올해로 소비자들은 위장막을 두른 GV80을 3년째 보게 되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기대감이 높아진 사람들도 있었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크기 쉽다. 출시 전 유출 사진과 “여백의 미”로 포장된 실내에 대한 치열한 썰전도 없지 않았다. 현대차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잡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GV80을 향한 관심과 잡음은 유독 더 크게 느껴졌다.
1. 실내 소재와 품질
놀랍도록 발전했다
걱정이 컸지만 차를 살펴본 순간부터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간 제네시스를 비롯한 현대차를 타면서 수도 없이 실내 소재와 품질을 지적해왔다. 프리미엄을 외쳤지만 프리미엄답지 않은 소재와 품질이 제네시스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실내 소재와 품질이 놀랍도록 발전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손에 닿는 곳의 소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된 버튼과 다이얼 등의 촉감이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현대차가 ‘지-매트릭스(G-Matrix)’라 부르는 패턴이 디자인뿐 아니라 촉감까지 잡은 것이다.
실내 소재와 마감 부문에 있어, 그간 현대차는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쓴다는 지적을 여러 번 받아왔다. GV80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내 마감도 신경 썼다. 컵홀더 안쪽, 흔히 플라스틱으로 마감하는 B 필러 등도 등도 가죽이나 부드러운 소재를 둘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내 곳곳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간 칼럼과 시승기 등을 통해 지적했던 실내 문제점 대부분이 개선되었다. 만약 앞으로 나올 제네시스 신차들이 GV80만큼의 꼼꼼한 실내를 갖춘다면 더 이상 그간 지적했던 부분을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 그간 지적했던 주행감
특히 서스펜션과 승차감
거의 모두 해결했다
G80 스포츠를 법인 차로 가지고 있고, G90을 매우 자주 타고 다녔다. 두 차를 모두 지적하던 것이 있는데, 경쟁 상대라 불리고 있는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에 비해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완전히 편안함을 추구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스포티함을 추구하지도 않는 애매함이 큰 문제 중 하나였다.
디자인에서도 알 수 있듯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것은 스포티함보다 편안함, 그리고 레트로 감성이다. GV80을 시승할 때 기존에 지적하던 것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디자인을 통해서도 표현하는 편안함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제네시스를 비롯한 현대기아차는 그간 후륜 서스펜션에 대한 지적이 여럿 있었다. 우리 시승기뿐 아니라 해외 매체나 포럼에서도 후륜 서스펜션을 여러번 언급한 바 있다. 전륜 서스펜션보다 설계가 덜 성숙하여 승차감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포티한 주행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GV80은 서스펜션 설계가 매우 훌륭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편안한 승차감 부분에서 말이다. 범핑 구간을 지나면 ‘캐딜락 CT6’처럼 부드럽고 기분 좋은 푹신함이 느껴진다. 현재 G90이 구현 못하는 고급스럽고 푹신한 승차감을 새로운 플랫폼이 적용된 GV80이 해낸 것이다. 비록 에어 서스펜션의 부재는 아쉬울 수 있으나, 전자식 댐퍼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빠져나갈 때도 무게 중심이 높은 SUV인 것을 감안하면 뒤뚱 거림도 잘 잡아주는 편이다.
3. 내가 알던 현대차보다
발전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현대기아차 신차가 나올 때마다 혁신에 가까운 발전을 이뤄냈을 것 같은 보도자료와 평가들이 쏟아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었다. 대부분의 현대기아차 신차가 나올 때마다 “딱 내가 생각했던 현대차만큼의 발전을 이뤄냈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분들이 그렇진 않겠으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여럿 계실 것이라 본다.
지금까지도 타고 있는 G80 스포츠와 G90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GV80은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알고 있던 현대차보다 몇 단계 발전을 뛰어넘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큰 폭으로 발전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새로운 차체’라는 키워드를 의미 있게 만들었고,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라는 키워드도 의미 있게 만들었다.
1번과 2번 내용을 종합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간 지적했던 실내 소재와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몇 년째 거의 비슷하게 머물러 있던 승차감도 큰 폭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 인상적이고, 디자인 요소로 촉감까지 잡았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현대차 발전 정도만을 기대하셨던 분들이라면 GV80을 통해 조금은 다른 인상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이 글이 끝나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실내 소재 전체적으로 좋다
그러나 우드 트림은 아직
필름지 느낌이 없지 않다
우선 실내 소재다. 앞서 언급했듯 실내 소재가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좋아진 소재는 가죽과 알루미늄 버튼까지 정도다. 편안한 고급차의 상징이라고도 불리는 우드그레인 소재는 조금 더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필름지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팰리세이드’ 차주분들은 섭섭하실 수도 있으나, 팰리세이드도 우드그레인 장식 표면이 필름지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고급스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우리가 탔던 시승차가 실구매가 9,500만 원 상당임에도 불구하고, 우드그레인은 팰리세이드처럼 필름지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좀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느낌을 살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2. 세계 시장서 경쟁이라면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대표적으로 디스플레이 거리
GV80은 제네시스가 세계 시장에 떠오를 수 있도록 화력을 불어넣어 줄 모델이다. 한국 시장만 놓고 본다면 모르겠으나, 현대차가 노리고 있는 세계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운전자의 사용 편의성이다.
정식 출시 전부터 센터 디스플레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사진상으로 거리가 멀어 보여 조작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실제로 탔을 때도 거리가 멀어 사용하기 불편했다. 터치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려면 비교적 몸을 앞으로 많이 뻗어야 한다. 몸을 앞으로 뻗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방 시야도 좁아진다. 아마 이 때문에 유독 GV80은 터치 패드를 강조한 것 같은데, 한국 소비자들은 대부분 터치 패드보다 스크린을 직접 터치하여 조작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 뉴 그랜저’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실내 공간이 매우 넓어졌다. 휠베이스가 늘어난 덕도 있지만, 대시보드가 뒤로 밀려나면서 운전석 공간을 더 넓게 설계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운전자와 센터패시아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버튼을 조작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는 거리도 멀어졌다.
몸을 앞으로 뻗을 경우 앞서 언급했듯 전방 시야가 좁아지는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운전자 사용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 현대차가 품평회 때 갖다 놓은 BMW처럼 말이다. 현대차는 GV80 보도자료에서 ‘인체공학’이라는 단어를 두 번 언급한다. 두 번 모두 ‘인체공학적 시트 시스템’만 설명할 뿐 실내 공간 전체가 인체공학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3. 내가 알던 현대차를 넘었다
그렇다고 다른 브랜드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나는 “내가 알던 현대차보다 훨씬 많이 발전했다”라고 말씀드린 바 있다. 예컨대, 기존의 현대차 신차는 세대교체 발전 정도가 40이라고 가정하면, GV80은 세대교체 발전 정도가 80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현대차보다 훨씬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일뿐 다른 브랜드를 뛰어넘을 만큼의 발전을 한 것은 아니다. 제네시스를 신생 브랜드라 하지만, 그 뿌리인 현대차는 분명 신생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다. GV80이 어찌 보면 재도약의 발판인 만큼 앞으로 나오는 신차들은 이를 뛰어넘는 발전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스포티한 차다” 강조하면
오히려 역풍 맞을 수 있다
차라리 아예 버리는 것도 좋다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 예컨대, 메르세데스 벤츠는 스포티함보단 편안함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고, BMW는 편안함보단 스포티함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제네시스도 이제 어느 한 키워드를 집중적으로 키울 때가 오지 않았을까?
이미 디자인을 통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했다. 디자인에 대한 썰전이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새로운 패밀리룩이 스포티함보단 편안함과 클래식함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를 집중적으로 키울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는 스포티함을 모두 버리고 편안함에만 초점을 두는 것도 좋다는 판단이다. 적어도 볼륨 모델인 GV80과 플래그십 세단 G90만큼은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개발이 더욱 집중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GV80을 스포티한 자동차라고 강조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향후 나올 3.5리터 터보 모델은 모르겠으나, 3.0 디젤은 분명 스포티한 자동차와 거리가 멀다. 만약 현대차 스스로 “GV80은 편안함에 초점을 둔 자동차”라고 말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며, 오히려 점수를 더 주고 싶다. 그러나 “GV80은 스포티하고 역동적인 주행 성능까지 모두 잡은 자동차다”라고 말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평가 항목에 올라가게 되고,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2. 스포티한 역할은
다른 모델에게
이미 제네시스 라인업 안에서 스포티한 자동차 역할을 해야 하는 모델들은 뚜렷하다. ‘G70’과 ‘G80 스포츠’, 그리고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이 발표에서 잠깐 언급했던 스포츠 쿠페 모델 정도가 되겠다. 역동적인 주행 성능은 이들에게, 편안한 승차감은 GV80과 G90에게 완전히 넘겨줄 필요가 있다.
하루아침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어렵다. 국산차 브랜드들이 가장 못하고, 국산차 브랜드 중에선 현대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모델별 역할 부여다. 모델별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 흔히 말하는 기본기를 완벽하게 갖춘 다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나가도 늦지 않는다.
이제 ‘가성비’라는 키워드 NO
진정 ‘차 vs 차’로 승부 봐야…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것
제네시스와 ‘가성비’라는 단어가 점점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장점이 많은 만큼 가격도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프로모션을 감안하면 ‘BMW X5’와 가격이 겹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보면 당연한 과정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다소 난감할 수도 있다.
가성비라는 키워드가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부터 진정 ‘차 vs 차’로 대결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밀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옵션이 아닌, 기술력과 호화스러움을 기준으로 대결할 때가 왔다는 이야기다. 즉, 평가 기준이 갈수록 까다로워져 지금껏 보여왔던 것보다 훨씬 발전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그래서 이 차 살 거야?”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차가 되어야 할 때다
판매량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함께 행사장을 간 우리 기자들에게 “그래서 돈 있으면 이 차 살 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시승했던 실구매가 9,500만 원 상당의 차 말이다. 기자들 모두 선뜻 “사겠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흔히 말하는 “이 가격이면”이라는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분명 GV80은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 3.0 디젤뿐 아니라 주력 모델 가능성이 큰 2.5 터보 가솔린 모델을 비롯하여 다양한 엔진 라인업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만큼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인지도가 상당한 편이기 때문에 판매량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은 판매량에 안주(安住)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국내 판매량이 아닌 이제는 세계 시장 판매량과 장악력으로 브랜드 가치를 판단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국내 시장 판매량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특히, 현대차 스스로 제네시스는 북미와 유럽에서의 경쟁을 예고한 만큼 국내 판매량에만 만족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가격에 GV80 살 거야?”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살 거다”라는 대답이 나오고, 반대로 “이 가격이 X5 살 거야?”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 돈이면 차라리 GV80을 살래”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 분명 현대차 품평회때 자주 등장하는 독일 브랜드 자동차들과 격차가 크다. 그만큼 갈 길이 멀고, 출발점도 다른 만큼 더욱 열심히 달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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