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제일이다”라는 신토불이 정신이나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등의 애국 마케팅은 자유 경쟁 시대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매운동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오늘날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상품성”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로, 결함 소식이 잦은 국산차 대신 품질이 보증된 수입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최근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돌입하며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 세계 시장이 통합되면서 국내에서 가성비와 편의성을 내세우며 배짱 장사를 벌이던 국산차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점점 가격대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반떼 가격대로 출시되는 수입차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점점 좁혀지는 가격 폭으로 “가성비” 타이틀을 내려놓을 위기에 처한 국산차의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이충의 인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도로에서 수입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 도로에서 삼각별을 목격하게 되면, 혹시라도 스칠까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말이다. 요즘은 도로 어디에나 수입차가 즐비해있으며 집 앞 골목에서도 주차된 수입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수입차는 사치품, 국산차는 가성비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공식이 점차 깨지고 있다. 구름 위에 형성되어 있던 수입차의 가격대가 지상으로 내려와 국산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산차에 몇 가지 옵션만 추가해도 수입차와 가격이 겹치게 되는 상황인지라, 국산차와 수입차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차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3대장,
제네시스와 벤츠, 그리고 BMW
국내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브랜드는 제네시스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자처하는 높은 사양과 수려한 디자인, 그리고 수입형 프리미엄 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경제력을 갖춘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가성비를 앞세운 제네시스의 독주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의 경쟁 브랜드이자 프리미엄 자동차의 수입 브랜드인 벤츠와 BMW의 가격대가 제네시스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리프트 소식을 연달아 전하고 있는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만 하더라도 제네시스의 동급 라인 G80과 큰 차이 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올해 3월 출시된 제네시스 G80의 가격대는 5,291만 원부터 8,276만 원까지이다. 그리고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실시한 벤츠 E클래스의 가격대는 6,450만 원에서 11,940만 원까지, 5시리즈의 경우 6,360만 원부터 1억 1,640만 원까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수입차에 한해서만 진행되는 자체 프로모션과 금융 상품을 적용한다면, 수입 브랜드와 제네시스 G80 상위 트림의 가격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구조가 겹쳐있기 때문에 제네시스를 구입하려고 마음먹었던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수입차로 눈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SUV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선호도가 높은 SUV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입차와 국산차의 가격 구조가 소비자의 갈등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제네시스의 SUV, GV80의 경우 6,067만 원부터 8,886만 원까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급 경쟁 라인인 볼보의 신형 XC90은 9,172만 원에서 1억 880만 원, 캐딜락 XT6은 8,391만 원의 가격대를 형성한다.

제네시스의 최저 트림과 수입차를 비교할 경우 어느 정도 가격 차이가 생기기는 한다. 하지만 제네시스의 최대 옵션 값이 2,320만 원인 점과 수입차에 프로모션이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옵션에 따른 실 구매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옵션의 적용 여부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예전이라면 옵션을 적용한 제네시스 GV80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엔진 부조 현상이나 차량 떨림 등 GV80의 결함 소식이 자주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은 쉽게 구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패밀리카로도 사용되는 SUV의 특성상 안전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함 소식이 잦은 GV80의 구매를 망설이고 있는 소비자도 많다. 반면 볼보 XC90은 최근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고도 사망자를 내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옵션 대신 안전을 선택하는 차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앗! 수입차, 아반떼보다 싸다?
폭스바겐 제타가
2천만 원대로 출시되었다
지난 10월 15일, 폭스바겐에선 7세대 신형 제타를 2,000만 원대로 출시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컴팩트 세단 7세대 제타의 국내 출시 가격은 2,714만 원부터 2,951만 원으로 폭스바겐 파이낸셜 프로그램, 현찰 구매 등의 프로모션을 적용한다면 최대 14%의 할인이 적용되어 2,300만 원대로 구매가 가능하다.

한편, 동급 준중형 라인의 국산차 아반떼의 가격은 1,570만 원부터 2,779만 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어 폭스바겐 신형 제타의 가격은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가격대가 동일하다면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이며 일각에서는 ‘수입차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BMW 자체 프로모션

수입차는 각종 프로모션으로
높은 할인 폭을 제공하고 있다
수입차와 국산차의 가격폭이 좁혀지며 소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지만, 같은 예산으로 고려할 수 있는 차종이 많아졌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입차와 국산차가 가격대를 공유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입차는 국산차와 달리 정가제로 거래되지 않는다. 같은 모델, 같은 조건의 차량이라도 매장이나 딜러, 프로모션 진행 여부에 따라 견적이 천차만별로 갈리게 된다. 이런 상황인지라 수입차는 국산차에 비해 인한 할인 폭이 큰 편이며, 시기만 잘 이용할 경우 정가보다 천만 원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차량을 구입할 수도 있다.

벤츠 자체 프로모션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벤츠는 평균적으로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몇 백만 원 수준의 할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BMW의 5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페이스리프트를 앞두고 1,300만 원대의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부분 출시한 지 조금 지난 이후부터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출시와 동시에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2월에 출시된 폭스바겐 투아렉 같은 경우에는 출시와 함께 천만 원대의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현재 폭스바겐은 7인승 티구안 올스페이스 모델에 대해 8%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현찰을 이용하여 구매할 경우 6%의 추가 할인이 적용되어 정가에서 400만 원 이상 저렴한 4천만 원 중반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으며, 이는 국산 중형 SUV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진=다나와자동차)

국산차는 품질 향상
명분으로 가격을 상승시켰다
수입차와 국산차가 가격대를 공유하게 된 것은 단순히 수입차의 가격 할인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품질 향상을 명분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도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지난 9월 출시된 4세대 투싼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전 모델에 비해 200만 원 정도 가격이 상승했으며, 국산 중형 SUV의 가격은 4천만 원대에 육박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자처하고 있는 제네시스의 경우, 이미 웬만한 수입차의 가격을 능가할 정도이다. 국내 제조사들은 신차를 선보일 때마다 “동급 최대의 성능”, “최신 기능 다수 탑재” 등의 카피를 내세우며 꾸준히 가격을 상승시켜 왔다.

(사진=보배드림)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가격 상승에 대해 “국산차도 상품성과 기능, 성능 등이 개선되었으니 납득할만한 하다”, “성능 개선에 있어 가격 상승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함 소식과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전해지면서 국산차를 옹호하던 사람들도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결함 소식에 기존 현대차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던 중년 세대 소비자들도 점차 수입차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토포스트에 제보된 다양한 자동차 결함

수입차는 해외에서 수입을 통해 부품이 조달되며 국내 제조사에 비해 서비스 센터의 수도 적기 때문에 수리가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때문에 빠른 AS와 저렴한 부품 가격을 이유로 국산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국산차의 행보를 놓고 보면 “가성비”와 “편리한 서비스”를 국산차의 장점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출시되는 국산차들은 저마다 품질 결함을 꼬리표처럼 달고 나온다. “OOO 결함”을 검색했을 때 연관 검색어가 뜨지 않는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이에 사람들은 반쯤 우스갯소리로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결함이 나올지 기대된다”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사진=달성 소방서)

문제는 결함이 발견되었음에도 제조사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고만 보더라도, 문제가 되는 배터리를 전량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BMS만 업데이트하는 등 소극적인 대처를 이어가고 있어 차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결함을 소비자의 탓으로 돌리거나, 오류 검출 장치에 코드가 뜨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상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실제로 오토포스트에 제보된 국산차 결함 사례의 경우 결함이 생긴 차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결함의 책임을 고객의 운전 습관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수리를 진행하지 않고 수리가 완료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산차의 결함 소식을 전할 때면, “이 정도 가격에 이런 옵션을 넣을 수 있는 차가 있으면 가져와봐라”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잦은 결함과 미흡한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차량 결함 문제는 목숨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국산차의 품질 개선은 시급한 문제이다.

차량 선택에 있어 “생산국”보다 “상품성”이 우선시되고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국산차가 현재와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브랜드의 이미지는 점점 악화될 것이다. 이는 곳 해외에서의 경쟁력 하락을 뜻하며 장기적으로 볼 때 수입차에게 국내 시장을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그토록 부르짖었던 품질 경영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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