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지 않는 돌엔 이끼가 낀다.” 얼핏 들으면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며 쌓아온 전문성을 이끼에 빗댄 말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 말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발에 채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등 일체의 역경 없이 한자리에 정체하고 있으면 그만큼 녹슬고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의 현대차의 상황이 이렇다. 수십 년 동안 현대차는 7~80%를 상회하는 점유율로 국내 자동차 시장을 떡 주무르듯 해왔다. 꾸준히 대두되는 품질 이슈에도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는 현대차에 대해 “르노삼성, 쌍용, 쉐보레 같은 경쟁기업들이 현대차를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현대차를 견제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르노삼성, 쌍용, 쉐보레의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이충의 인턴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어김없이 결함 문제가 따라붙는 현대차의 품질 이슈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차는 지난 수십 년간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 현대차를 견제할 기업, 흔히 말해 “르쌍쉐”가 현대기아차를 견제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현대차의 높은 점유율이나 판매 성과에 대해서 “현대차가 잘해서가 아니라 경쟁업체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서로 견제하고 경쟁해야 할 대중적 국산 브랜드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어 현대기아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형 SUV 시장을 선도했다는
XM3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올해 9월까지 국내 소형 SUV 시장은 전년 대비 28.4%의 성장을 기록했다. 이 중 증가 물량의 75%를 르노삼성의 신형 XM3이 차지했다. 이에 사람들은 “르노삼성이 소형 SUV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시장의 판세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의 상승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증가 물량의 75%를 차지하는 XM3의 경우 출시 초반에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7월부터 9월까지는 판매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소위 말하는 “신차효과”가 벌써 빠지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르노삼성의 하락세는 소형 SUV 시장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9월, 현대, 기아, 쌍용, 쉐보레 등 국내 제조사들은 올해 처음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판매량이 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코로나19로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자동차 업계에서 이례적으로 판매량 성장을 일궈낸 것이다.

하지만 르노삼성만큼은 즐거운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 유일하게 작년 대비 판매량 하락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르노삼성은 결국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 관리를 위해 한 달간 공장 근무시간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진=한국일보)

기업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또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르노삼성의 신차가 힘을 발하지 못한 것은 XM3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한 SM6은 물론 QM3의 후속 모델 캡처까지 내놓는 신차마다 줄줄이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르노삼성에 이어 르노그룹도 올해 누계 판매량이 26% 감소할 정도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일각에서는 “르노의 몰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판매량 저조로 난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르노삼성자동차 노조가 파업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져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한편 파업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노조에 대해 “회사가 어려운 상황인데 파업이라니 이해가 안 된다.”, “배가 부른 것일까?”라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현재 르노삼성은 QM6 페이스리프트 이외에 마땅한 볼륨 신차를 내놓을 계획도 없는 상황이라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경차 시장을 제외한 차급에서
현대, 기아차에 대항할
마땅한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한다
지난 9월, 쉐보레는 올해 처음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9% 상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쉐보레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판매량이 증가했다곤 하지만 시장 전체 점유율은 5% 정도로 현대기아차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쉐보레는 현재 경차 시장에서의 스파크를 제외한 다른 차급에서 이렇다 할 강력한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중형 세단 말리부의 시장점유율은 3%에 불과하며, 최근 연식변경을 진행하긴 했지만 꾸준히 단종이 거론될 정도로 저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소형 SUV 시장의 트레일 블레이저도 르노삼성 XM3의 약세로 판매량이 상승하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점유율은 8.9%에 불과하다. 특히 르노 삼성이 저조한 모습을 보였던 9월 판매량도 XM3에 못 미치는 수치를 기록했다.

대형 SUV 쉐보레 트래버스는 올해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하며 변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페이스리프트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시장 점유율도 2.5%에 그쳤다. 사실상 현대차를 견제할 마땅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얼 뉴 콜로라도가
성공한다 해도
여전히 점유율은 낮다
한편 쉐보레는 지난 14일, 픽업트럭 콜로라도의 풀체인지 모델 “리얼 뉴 콜로라도”를 시장에 선보였다.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강조한 콜로라도는 현재 쉐보레에서 스파크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자사 주력 모델 중 하나이다.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을 강조한 픽업트럭 리얼 뉴 콜로라도를 통해 쉐보레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콜로라도가 성공한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차급에선 경쟁력 있는 모델이 없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국내 판매량은 증가했지만
전체 판매량이 줄어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뷰티풀 코란도 이후 지속되는 판매량 저조로 꾸준히 위기설에 휘말린 쌍용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이 올해 9월 처음으로 상승했다. 지난 9월 쌍용차의 내수 시장 판매량이 작년 9월 대비 13.4% 증가하여 총 8,208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수출 시장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내수 시장 판매량은 증가한 반면 수출 판매량은 작년 대비 46.7% 감소한 1,626대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을 합친 전체 판매량은 4.4% 감소하게 되었다. 게다가 올해 3분기에는 순 손실액만 1,024억 원을 기록하며 2017년 1분기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3,500억 원을 들여 만든
코란도의 실패가 원인이었다
매번 천억 원 대의 손실을 기록하는 적자의 원인은 쌍용자동차의 악수라고 평가되는 “뷰티풀 코란도” 때문이다. 쌍용자동차는 티볼리의 성공 이후 정통 오프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코란도 디자인을 티볼리와 유사하게 변경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기존 코란도의 정체성을 해친 디자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는 판매량 저하로 나타났다. 3,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진행한 신형 코란도의 판매량은 월 1,200대 정도에 불과했으며 쌍용자동차는 심각한 적자에 빠져들었다.

이후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쌍용자동차의 재정상황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가격 할인, 무이자 할부, 이벤트 등의 고정 비용으로 어느 정도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큰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어지는 적자에 쌍용자동차는 직원 복지, 인건비 등 고정비를 감축하고 서울, 부산 부지 등을 매각하며 가까스로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는 사활을 걸고 자사 주력 모델 렉스턴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했다. 디자인부터 파워트레인까지 변화를 거친 신형 렉스턴의 흥망에 따라 쌍용차의 존망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신형 렉스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번 렉스턴을 통해 쌍용자동차가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2000년대 초 핸드폰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정보이용료를 내지 않기 위해 종료 버튼을 연타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통신 3사의 시장 독점으로 말도 안 되게 높았던 핸드폰 요금을 낮추고 스마트폰을 대중화시킨 것은 애플의 한국 진출 이후부터이다. 핸드폰 시장에서 애플의 등장은 경쟁 시장에서 견제 없는 발전이 일어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래 썩은 물은 냄새가 진해지며 돌에는 끼는 이끼는 갈수록 두껍게 쌓인다.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되돌리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국산차의 잦은 품질 이슈를 타개하기 위해서 국내 제조사의 노력과 더불어 이를 견제할 경쟁 기업의 노력이 시급하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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