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전동화 전환
위기에 처한 부품 업계
국내 상황 특히 심각해
지금은 어쩌면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온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자동차의 첫 등장 순간부터 쭉 사용된 내연기관에서 전기, 수소 등 전동화 파워트레인으로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속도도 유례없는 수준으로 빠르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자동차 업계와 각국 정부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나머지 부족한 충전 인프라, 미비한 안전 규정 등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부품 업계가 완성차 업계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도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데 꽤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글 이정현 기자
전체 전동화 얼마 안 남았다
제네시스는 2025년 목표
지난 26일 국내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 기아,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르노코리아자동차 등 완성차 제조사들은 각자의 전동화 전환 로드맵을 제시했다. 제네시스의 경우 2025년부터 수소 및 전기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신차만 출시하며 2030년을 기점으로 내연기관 라인업을 모두 단종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전용 플랫폼 기반 모델 6종을 포함한 전기차 17종 이상을 출시하고 전동화 모델 판매 비중을 36%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기아는 내년 플래그십 전기 SUV EV9을 포함한 매년 2종 이상의 신차를 출시해 2027년 총 14종의 전기차 풀 라인업을 구축하며 2030년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 비중 52%를 목표로 한다.
내연기관 국산화율 95%
전동화 시대에는 폭락 예상
GM은 2025년까지 한국 시장에 전기차 10종을 출시하고 2030년까지 모든 브랜드의 완전 전동화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르노코리아차는 올해 출시한 XM3 E-테크를 시작으로 2024년에는 지리자동차와 합작 개발한 하이브리드 신차, 2026년에는 순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쌍용차는 35년 만에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변경하고 내년 중으로 토레스 기반 순수전기차 및 전기 픽업트럭, 2024년 KR10 전기차 등을 선보인다.
자동차 부품 업계가 이를 따라가기 위해선 전면적인 사업 재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 위주의 부품 제조사는 지난 2019년 기준 1,668개에 달했으나 2030년에는 500개가 줄어 1,168개만 남을 전망이다. 내연기관의 경우 현재 국산화율이 95%에 이르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국산화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공급망도 미약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동화에 회의적인 분위기
국내 업계 5%만 준비됐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 업계의 신속한 사업 개편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지에 비해 전기차 부품 제조 업체의 점유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관련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업계 내부적으로도 전동화 전환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전기차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 비율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며 중국은 공식적으로 14%다. 유럽 역시 이들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계의 경우 고작 5%에 불과해 점유율 자체가 매우 낮으며 미래 경쟁력이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영업이익도 하락세
투자 자체가 어려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부품 업계의 영업이익이 계속 하락세인 만큼 전동화에 대응할 여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동차 부품 제조 업계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은 12.9%, 중견기업은 17.2%, 중소기업은 17.9% 증가했다. 외형적으로는 성장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3분기 기준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한 2.9%를 기록했으며 중소기업의 하락 폭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난다. 전년 동기 대비 3분기 누적 영업 이익은 대기업이 4.5%, 중견기업이 12.2% 증가했으나 중소기업은 7.5% 감소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업계 전반이 전동화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대적인 협력 시급
타이밍 놓치면 도태
전문가들은 박리다매 형태인 자동차 부품 업계의 수익 구조상 대기업들로부터 수조 원 규모의 매출이 발생해도 연구개발 투자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전동화 부품 생산을 위해선 전반적인 시스템과 각종 생산 설비를 모두 바꿔 나가야 하는데 이러한 대규모 전환을 자체적으로 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 부품 업계에 모든 것을 맡겨놓기만 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으며 중앙 정부의 주도하에 지자체, 산학 연구 기관과 협동 연구를 하는 등 대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동화 전환 추세는 현재도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자동차 부품 업계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