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인데 수입차 로고?
일명 ‘배지 엔지니어링’
국산차 사례들 살펴보니
해외여행 중 현지에서 돌아다니는 국산차를 유심히 살펴보면 국산 브랜드 대신 생소한 로고가 달려있는 모습을 한 번쯤 발견할 수 있다. 디자인만 봐도 분명 현대, 기아, KG 모빌리티(구 쌍용차) 등이 맞는데 어째서 엉뚱한 로고가 붙어 있는 걸까?
이는 사실 자동차 업계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일이다. ‘배지 엔지니어링‘은 하나의 모델을 같은 그룹 산하의 다양한 브랜드로 출시하는 전략으로 시장별로 부족한 라인업을 보강하거나 제조사 간의 기술력 공유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배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해외에서 다른 브랜드로 판매된 국산차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글 이정현 기자
미쓰비시로 팔린 포니 엑셀
닷지 브랜드로 판매된 베르나
현대차 포니 엑셀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북미 시장에서 미쯔비시 프레시스라는 모델명으로도 판매되었다. 전량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생산됐음에도 미쯔비시 브랜드로 판매된 이유는 당시 미국의 일본차 수입 규제 때문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매년 200만 대 미만 물량만 판매할 수 있었기에 미쯔비시는 현대 포니 엑셀을 배지 엔지니어링 해 자사 영업망으로 판매하는 묘수를 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현대차는 포니 엑셀과 프레시스를 합쳐 누적 생산 100만 대를 돌파했다.
한편 베르나는 2006년 멕시코 시장에서 닷지 애티튜드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됐다. 당시 멕시코 진출을 검토 중이던 현대차는 시장 반응을 살필 방법을 고민하다가 제휴 관계에 있던 다임러 크라이슬러를 통해 베르나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을 출시했다. 이후에도 베르나는 현대차가 멕시코에 진출한 2014년까지 닷지 로고를 달고 판매되었다.
티볼리 인도 전용 모델
쌍용차가 벤츠로 둔갑?
쌍용차(현 KG 모빌리티) 티볼리는 인도에서 마힌드라 XUV300이라는 모델명으로 판매 중이다. KG 그룹에 인수되기 전 마힌드라가 대주주였기 때문이다. XUV300은 로고만 바꿔 끼운 현대차 포니 엑셀, 베르나와 달리 현지화 작업을 거쳤다. 앞뒤 오버행을 줄이고 인도 세제 혜택 기준에 맞춰 1.2L 가솔린 엔진, 1.5L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자동변속기 없이 수동변속기 사양만 판매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때 학원차로 인기가 많았던 이스타나는 해외에서 메르세데스-벤츠 MB100 모델로 판매되었다. 로고와 모델명 외에는 다른 점이 없었음에도 벤츠의 삼각별 로고를 달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쌍용차와 벤츠는 이해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승합차를 판매하려던 벤츠는 생산 기지가 필요했고 쌍용차는 벤츠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1995년 출시된 이스타나는 1999년부터 벤츠 로고를 달고 단종될 때까지 MB100이라는 모델명으로 수출됐다.
복잡한 과정 거친 2세대 SM5
프랑스 정부 차량으로도 쓰여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 SM5 2세대 모델은 꽤 독특한 케이스다. 애초에 SM5 2세대 모델은 닛산 티아나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는데 이를 다시 르노 모델로 판매했기 때문이다. 이미 배지 엔지니어링을 거친 모델을 다시 한번 배지 엔지니어링 한 셈이다. 중동 시장에서는 르노 사프란이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됐다. 당시 SM7 주력 파워트레인이던 2.5L 4기통, 3.5L V6 엔진을 탑재했다. 이후 출시된 3세대 SM5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수출됐다.
유럽 시장에서는 르노 래티튜드라는 모델명을 달고 브랜드 기함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앞서 출시됐다가 2009년 단종된 벨사티스의 후속으로 등장해 프랑스 정부 관계자 업무 차량 및 칸 영화제 의전 차량으로 활용된 바 있다.